집 주변에 목련이 많이 피었다. 목련은 화끈한 꽃이다. 다른 꽃보다 먼저 핀다. 겨울눈도 크고 꽃잎도 엄청 크다. 꽃이 피려나 보네 하고 한 이틀 있다 보면 큰 꽃잎이 활짝 피어 있고 이내 땅에 잎들이 떨어져 구겨지고 얼룩져 있다. 중학교 교목인지 교화인지가 목련이었다. 나는 왜 이런 게 아직도 기억이 나지? 고등학교랑 초등학교 교화인지 교목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중학교는 기억이 난다. 짙은 자줏빛이 도는 목련도 있다.
학창 시절에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름을 많이 알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저기 꽃이 피었다 보다는 저기 수국이 피었다 라고 하는 게 상상하기가 더 쉬울 테니 말이다. 허나 내가 아는 이름은 그 수가 많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내가 아이들보다는 꽃 이름을 더 많이 아니까 아는 한은 이름을 다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좀 그런데 집착을 하는 것 같다.
봄에는 조바심이 난다. 하루가 다르게 꽃이 피어나고 연한 새 잎이 돋아난다. 내가 왜 조바심을 내지? 언제부터 이렇게 조바심을 냈지? 조바심이라기 보다는 좀 안타까웠던 것 같다. 아마 벚꽃 때문일테다. 벚꽃은 피고 더 피고 더 피는데 그러는 중에 꼭 비가 내린다. 한 번은 꼭 내리고 아니면 바람이 그렇게 불어서 한창 피는 중에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다 피고 나서도 우수수 떨어진다. 해서 꽃은 아직 남았는데 새 잎도 나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시점이 참 안타까웠다. 그러다 꽃이 다 져버리고 4월말이나 5월경이 되면 천지 나무에 연둣빛 잎이 돋아나는데 그러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꽃이 하냥 피어있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런 거겠지? 아이들에게 봄의 꽃들이 내 것인양 매일 보여주고 싶다. 지천에 있지만 보여주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가기 때문에 학교 가는 길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손 잡고 걸어가는 길에 문득문득 아이들을 세워서 자 여기서 고개를 들어 봅니다 하얀 목련이 어제보다 더 피었어요 라고 말한다. 민들레가 부릉부릉 꽃 피우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러 보여준다. 꽃대가 얼마나 자라는지 보자? 라고 말한다. 듣는 아이도 있고 안 듣는 아이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어서 말한다. 그래도 남겠지? 라는 마음에 말한다. 살면서 내 주변에 뭐가 있는지 살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는 마음에 말한다. 아니다 그냥 내가 아이들에게 말이 걸고 싶어서 말한다. 엄마 입에서는 이런 예쁜 꽃 이름도 나온단다? 하는 마음으로 말한다.
적다보니 또 이리 헷갈린다. 이 글은 찰나에 사라질 화려한 봄에 대한 이야기인가 내 새끼에 대한 사랑고백인가. (202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