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그런데 아직은 아니고..

by 구우

종종걸음으로 12월이 왔다. 발걸음을 보채며 12월이 왔다. 더 빨리 달려오고 싶었을 텐데 앞서 가고 있는 열 한 개의 달을 몽땅 제치고 오지는 못했는지 올 때 되어 왔는데도 지각한 아이처럼 조급해 보인다.


...라는 건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12월이 반갑지만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느낌이다. 앞서 왔다 간 열 한 개의 달을 만나본 적 없는 것처럼 갑자기 맞닥뜨린 기분이다. 떡하니 생일이 있는 달이어도 그렇다. 생일이어서 뛸 듯이 기뻤던 시절은 있었겠으나 그보다 더 먼저 드는 생각은 아이고 올해도 다 갔네.


올해의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노화에 관련된 것이다. 새 봄 마른 땅에서 겨우 존재를 드러내는 새싹 같았던 흰머리카락이 뽑든 숨기든 아랑곳없이 존재감을 내뿜는 바람에, 그것도 앞머리 부분에서 양껏 뽐을 내는 걸 깊은 갈등 끝에 가만히 놔두기로 했다. 언제쯤 염색을 하게 될까? 안 하고 싶은데 버틸 수 있을까? 흰머리는 잘못도 문제점도 아닌데 어떻게 숨길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도 노화겠지? 올해는 나름대로 운동을 하는 한 해였다. 홈트도 하고, 걷기도 하고, 미약하지만 식사량도 줄였고 무엇보다 삼 개월 전부터 러닝도 하고 있는데 딱히 체중과 체형에 변화가 없다. 이 정도의 운동조차 하지 않았던 작년과 재작년에 비교해 변화가 없으니 나는 조금 울적한데, 이 정도 운동량도 부족하다느니, 식사량을 더 줄여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더 울적하다.


그래서 12월이 안 반가웠나? 내가 생각한 12월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얼굴 붉힐 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때때로 과소비를 하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한다. 달리기를 할 때 이전보다 기록이 좋거나, 컨디션이 좋아진 걸 느끼면 뿌듯하다.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 일과 주변을 잘 정리할때 개운하다. 이렇게 소소하게 야무지게 놓치는 기분 없도록 잘 챙기고 살았는데 막상 12월이 오니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뭔가 못한 게 있나? 그래서 작은 거라도 악착같이 매달린건가?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뿐인데 1월에 시작했으니 12월에는 결실이 있을 것이라 혼자 정해놓고 혼자 실망한 셈이다. 내 몸과 내 마음에는 달력과 시계가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잘 챙기면 된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12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할 듯 하다.


이러다 1월이 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하고 일신우일신하려나? 하겠지? 올 해 안에 무엇을 이루겠다가 아니고 될 때 까지 그냥 해 본다는 마음으로 살면 되겠지? 아프리카 기우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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