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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원택 May 26. 2016

프롤로그

어느 사장님의 HACCP 준비부터 인증받기까지 #3

어느 사장님의 HACCP 준비부터 인증받기까지 #3


 HACCP를 준비한지 11개월만에 최종 완료된 기준서를 지방식약청에 제출하였다. 이때도 한 번에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막상 신청서와 구비서류를 제출하려고 챙기는데 왜 이렇게 부족한 것이 많은지 결국 일주일 내내 추가 작업을 했었다. 제출할 때 식약청 직원이 질문하면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도 걱정됐으나 걱정과 달리 특별히 곤란한 질문은 없었다.  

 

 서류를 제출한 지 10일째 되는 날에 식약청으로부터 서류 보완요청이 왔다. 부적합이 아닌 보완이라 다행이었다. 식약청에서 지적한 사항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더 고민되는 것은 지적 사항은 이해되는데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없는 부분들을 모아 회의를 하여도 답답하기만 했었다. 결국 답답한 부분을 모아서 HACCP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완을 하였다. 보완 서류를 식약청에 제출하고 10일이 지나도 현장 심사일정 통보가 없어 식약청에 연락했다. 언제쯤 현장에 올지 문의하였더니 다음 주에 심사 일정이 잡혔다고 했다.

 

 현장심사에 대비하여 대표이사 이하 전 직원이 모였다. 물론 시설개선 공사는 이미 끝났고, 현장 직원도 어느 정도 잘 이해하고 적응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심사를 받을 것을 생각하니 수능을 앞둔 수험생 마냥 긴장 그 자체였다. HACCP 팀장 교육, HACCP 검증교육 때 전문강사가 식약청 현장심사 부적합 중 가장 많은 것은 직원의 ‘이해 부족’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회사 내부적으로 당장 할 것은 인터뷰할 직원이 기준서를 더 잘 이해하고, 현장 직원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생산부는 현장 직원 전체 회의를 하더니 일주일 동안 작업장 대청소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간 정기적으로 해왔지만 심사를 대비하고 현장 직원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죽기 살기 청소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이고 직원 한 명씩 담당 공간과 담당 기계를 배정하여 추진했다. 심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 갔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대표이사는 HACCP팀 직원과 관계 직원을 다 불러서  회식을 하면서 “잘 될 거야, 다 힘내자! 최선을 다 하자!”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드디어 심사가 시작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현장심사에서 발생했다.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직원이 갑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출근하지 않아 업무 대행자를 배치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했다가 모니터링 담당자 역할을 하게 된 50대의 현장 여직원은 긴장한 나머지 모니터링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육할 때는 잘하던 모니터링을 시연하면서 실수까지 했다. 거기다 그렇게 열심히 청소했던 현장에서도 지적 사항이 나왔다. 일반구역에 설치된 외포장 기계의 안쪽에서 지저분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장 심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실시하는 인터뷰 심사에서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담당 직원이 긴장한 나머지 심사원의 위해요소분석 절차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었다. 첫 질문을 놓치고 나니 한계기준 설정에 대한 질문까지 모두 다 답하지 못하였다. 

 첫날 심사가 끝나고 식약청 공무원들은 떠났지만 직원들은 밤을 새서 지적받았던 기준서 내용과 현장 지적사항 모두를 보완해야 했다. 쪽잠을 잠깐 자고 나니 벌써 이튿날 심사시간이 되었다. 현장심사가 다시 진행되었다. 밤을 새다 시피하면서 보완했지만 첫날 지적된 것이 많아서 통과가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심사 종료회의 때 식약청 심사원은 안타깝게 ‘부적합’이라고 했다. 그곳에 있던 임직원은 하나같이 맥이 풀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라는 미련과 함께 하루가 저물어 갔다. 이렇게 긴 이틀은 우리 직원 어느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부적합 사항이 나열된 식약청 공문을 받았다. 대표이사는 공문을 한참을 보더니 “다시 또 하자. 처음 시작했을 때 보다 우리는 많이 발전했다. 우린 틀림없이 할 수 있다”라며 독려했다. HACCP팀은 오기가 생기는지 의욕을 불살랐다. 나이 드신 공무 부장님은 주변 회사 얘기를 하면서 “한 번에 인증받은 회사는 많이 없다고 하더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 날 저녁은 다 같이 뜻을 모으며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 직원들 간의 결속력 및 유대 관계는 더 좋아졌다. 최초 심사 후 한 달 동안 기준서, 현장 양식들을 더 보완했다. 현장 종사자 교육을 더 열심히 시켜서 숙지시킬 것은 달달달 외게 하고, 체득할 것은 습관화될 수 있도록 했다. HACCP 담당자 역시 위해요소분석이나 한계기준 검증을 더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현장은 세척 및 소독을 생활화함으로써 형식적 측면보다는 실질적 위생과 안전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 직원도 식약청 심사를 받고나서 눈에 띄게 자세가 변화했다. 드디어 재신청을 했다. 서류심사에서 별 문제가 없었다.

 

 재신청한지 한 달이 되던 날 식약청에서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 걱정했던 현장 평가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예산 부족으로 미비한 부분을 알고도 못 고친 것은 내년 예산에 반영해서 고칠 계획이라고 내부 결재문서까지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또 다른 부분은 건물 자체의 골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라 대안책으로 이 방식을 선택하였고, 미흡해 보이지만 교차오염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검토해 본 결과 큰 문제점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장 심사때 옆에 같이 동행하였던 생산부서 직원도 첫 번째 심사 때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질문에 답변하였다. CCP 모니터링 담당자, 현장 점검 담당자 모두 1차 심사 때보다 훨씬 더 잘 해주었다. 1차 심사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장 심사 후에 사무실에서 기준서 내용에 대한 서류 심사가 이어졌다. 직원은 식약청 공무원의 질문 요지에 맞는 자료를 잘 찾고, 잘 답변했다. 두 번째라고 하더라도 긴장이 안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 일부 있어 아쉬웠다. 심사가 다 끝나고 난 뒤 총평 시간이 되었다. 식약청 심사원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침묵이 잠시 흐른 뒤 “규정된 점수보다 조금 높은 점수입니다. 적합입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표이사가 벌떡 일어나 감사하다고 큰 인사를 했다. 심사 공무원이 가고 나서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대표이사, 관리직원 그리고 현장 직원 모두가 다 감격했다. 직원 모두가 하나가 되어 HACCP를 인증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했다.

 

 HACCP팀은 식약처 인증을 받고 나서 곧바로 사후관리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식약처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 1년간 해왔던 노력과 단합을 잊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어렵게 얻은 결과인 만큼 HACCP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싶어했다. 이제 HACCP 인증으로 끝나지 않고 더 일치단결해서 회사 관리시스템으로, 더 나아가 경영시스템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HACCP 팀원들은 회사 업무를 하면서 기준서 작성, 교육, 현장화 등을 추가 업무로 일했다. 마음 고생, 몸 고생 어느 하나 안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직원 개개인이 많이 성장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뛰어난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본 내용은 2010년도에 HACCP을 지정받은 회사들의 사례를 독자의 이해 증진을 위하여 재구성 것으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HACCP ‘지정’이라고 하였고, 최초 심사를 식약청 지방청에서 수행하였음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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