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우울한 밤

혹은 그 누구라도

by 하치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던졌다. 정말로 우울해서인지 아니면 고즈넉한 밤에 취한 것인지. 그게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우울하다'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누구나 그런 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란것이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배마냥 거침없이 흔들리다 가라앉는 그런 밤이.


밤에 찾아오는 우울함의 마력은 상당하다. 비유를 하자면 굉장히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는 장미와 같다랄까? 밤의 우울은 그만큼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취급주의요망'중 한가지이다. 이런 날에는 유독 혼자인

느낌이 강해져서 괜시리 슬픈 노래를 찾고, 슬픈 기억을 되돌려본다. 그리고 말을 잃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깊게 깊게 가라앉는다. 아주 깊게.


밤이 주는 우울의 깊이에 중독된 친구가 한명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때는 그런 깊은 우울이 굉장히 멋있어보였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깊은 우울에 빠져버려 사람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피하고, 믿음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믿음을 먼저 주지 않았으며, 모든 행동에는 거리감이 여실히 느껴지는 가식이 배어있었다. 그런 모습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안타까울따름이다. 밤의 우울을 끌고 나와 담요처럼 하루 종일 뒤집어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밤의 우울을 밤으로만 끝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개 밤과 함께 찾아오는 이 우울은 우리가 다시금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기쁨이와 슬픔이가 나오는 장면에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 이유는 슬픔뒤에 기쁨이 찾아오고 기쁨뒤에 슬픔이 찾아와 이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밤이 주는 우울도 그렇다. 그 우울에 취해 밤이 지난 시간에 그 우울을 뒤집어 쓰고 나오지만 않는다면, 나는 밤의 우울함을 권장하고 싶다.


누구나 기쁨이 있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우리는 웃기만 할 줄 알아서는 안된다. 울줄도 알아야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나아갈 수 있으니까.

단언컨대 나는 이 우울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