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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형아 Sep 18. 2018

'실패한 특검',타이틀 이면엔 특검의 소심함이 있었다

드루킹 특검 취재 후기- 하나.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24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전 보좌관 한모 씨, ‘드루킹’김동원 씨를 비롯해 ‘경제적 공진화 모임’ 회원 10명을 네이버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특히 김 지사에게는 댓글 여론 조작을 통해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올 6월 치러진 지방선거까지 도와달라고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이익제공금지 위반)까지 적용했다. 사실상 김 지사와 김 씨를 한 몸이라고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특검 취재를 전담했던 것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김 지사가 정말 드루킹에게 보고를 받았느냐였다.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하기는 했느냐, 기한 연장을 안 한 것도 졸속 수사의 이유 때문 아니냐 등은 그 다음이었다.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의 입장에서 특검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으니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 ‘드루킹 특검’은 실패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옹호했다. 적어도 허 특검의 여러 결정엔 고심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 도중 드루킹의 USB 자료 일부를 입수했던 나는 나름 확신이 있었다.


  허 특검은 수사 초기부터 진술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겠다고 밝혔다. 최초의 '포렌식 특검'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허 특검이 특검 내 각 팀에 지시한 수사 방향은 김 지사와 김 씨의 관계를 입증할 각종 증거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을 상당 부분 공범으로 볼 근거가 나와 수사에 활용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김 씨가 김 지사를 만날 때마다 남긴 문서파일들이었다. 김 씨가 경공모 핵심 관계자 10명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서만 공유했던 이른바 '정보보고'의 정리 문건이었다. 또 댓글 조작 작업을 일자별로 정리한 ‘백서’도 한 몫 거들었다. 각각의 파일이 작성된 날짜와 텔레그램, 시그널을 통해 나눈 회원 간, 김 지사 및 한 씨와의 대화는 이 모든 공백을 촘촘히 메워줬다. 김 지사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파견검사 13명마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여러 정황을 토대로 보면 김 씨는 김 지사를 상당히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의 요구에 따라 직접 ‘재벌개혁’ 관련 문건을 건넸고, '네이버 관련 정보보고' '안철수 후보 측의 대선 전략 보고서' 등을 전달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지난해 1월 10일 김 지사가 경기 파주시 경공모 사무실(일명 산채)를 찾았던 때 김 씨는 문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도 김 씨는 기록으로 남겨뒀다. 그리고 ‘문 대표와의 통화 준비사항.docx' 명칭의 MS워드 문서를 작성했다. 경공모가 원하는 경제 정책과,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된 각종 제언을 포함한 채. 


출처=동아일보 DB


  그렇게 찾아낸 증거에 주목한 것은 특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남긴 증거를 뼈대로 삼고 김 씨와 경공모 회원, 구속 수감된 피의자들의 진술로 보강했다. 그럼에도 특검에게 돌아온 것은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였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여야 정치권은 수시로 특검을 때렸다. 그때마다 특검의 태도는 묵묵부답이었다. 언론이 확성기로 소리를 키워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의 심장부를 겨눴으니 당연히 신중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국정농단’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과의 보색대비 효과가 너무 컸다. 


  허 특검은 소심했다. 박 특검은 언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알았고 허 특검은 언론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사건을 맡은 수사기관들은 소위 순풍에 돛을 달기 위해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일이 다반사다. ‘수사결과 공식 브리핑→언론 보도’ 또는 ‘특정 매체의 단독 보도→타 매체들의 사실관계 확인 질문과 응대→관련 보도의 확산’의 투 트랙이 일반적이다. 특검은 둘 모두를 거부했다. 오죽하면 특검이 정치권에서 욕을 먹은 것만큼 기자들에게 욕을 먹었을까. “최소한 특정 매체에서 보도된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해줘야 우리도 보도할지 결정할 것 아니냐” “수사내용 관련해 알맹이를 빼고 말할 거면 브리핑은 왜 하느냐” 등. 기자실에서, 건물 외부에서 특검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출퇴근길의 특검에게 대놓고 '야지'를 주는 기자도 있었다. 특검과 기자의 관계는 공생보다는 반목이었다.


  때문에 현장 기자들은 특검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끊임없이 취재 루트를 찾아가야 했다. 경찰과 검찰을 거쳐 특검으로 이관된 사건인 만큼 수사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정보가 많기도 했다. 공범 등 피의자들만 최소 30여 명, 이들을 돕는 변호사들까지 더하면 여타 사건보다 다양한 편이었다. 매체별로 많게는 4명, 적어도 1명씩 특검 취재를 위해 파견해둔 상황이었고 인력이 많을수록 커버에 용이했다. 우리 팀은 선배와 나, 둘 뿐이었던 탓에 특검 출범 후 첫 40일간은 하루 2~3시간 쪽잠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발품을 많이 팔았고 많이 만났다. 

  

  여러 단독 기사는 그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특검에 대한 불만은 늘 있었다. 타사에 확인해주지 않았던 탓에 기사의 반향은 더 커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타사가 보도한 단독 기사를 확인해주지 않아 데스크 선에서 왜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느냐는 질책도 받았다. 타사의 단독 보도는 취재기자들에겐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확인되면 보도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이중고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이 있는 기사들마다 확보한 자료를 최대한 사실대로 우겨넣으려 했다. 종이신문이라는 한계 탓에 제약이 늘 있었지만 타사의 반응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거짓말' '허위 보도'라는 이른바 선동꾼들의 목소리에 대응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취재가 거듭될수록 특검의 소심함에 대한 의문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수사를 담당한 사람이 수사에만 매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사를 통해 밝혀낸 합리적 의심과 이른바 확인된 사실관계는 드러내야 하는 것도 맞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과 싸워야 할 때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특검은 '언젠가는 우리의 진심을 드러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일 여야 정치권이 특검의 이 정도(正道)를 지키도록 놔주지 않는 상황에서 순진한 생각이었다. 두드려 맞으며 오명만 덧씌워졌다.

출처=뉴스1


  어렸을 때부터 단체 운동을 즐겨했고 익숙했던 나로서는 악의를 가지고 덤벼드는 적과는 처절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배우며 자랐다. 특히 깎아내리기로 진창이 돼 버린 싸움판에서는 더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기도 하다. 팩트가 빈약한 이른바 몸집만 큰 상대에게는 몇번의 잽과 깊은 스트레이트만으로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입을 다문 허 특검으로 인해 김 지사 측이 언론을 통해 입장을 확장하는 데에도 손 쓸 수 없었다. ‘드루킹 진술 오락가락’ ‘드루킹에게 매크로 작업의 영감을 준 것은 한나라당' 등. 곳곳에 균열이 난 특검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의 비판까지 직면해야 했다. 


  지난달 27일 수사결과를 종합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에서 허 특검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쏟아진 여러 비난에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본류에 맞게 수사했을 뿐이라는 억울함과 결백함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현장에서 특검의 얼굴을 마주했던 나로서는 일부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특검 스스로 자초한 문제였음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반성이나 고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관계자는 “왜 이렇게 소심한지...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매번 브리핑을 앞두고 특검 내부에서는 "이번에는 입장을 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고 한다. 그때마다 끝까지 입을 다물자는 것이 허 특검의 고집이었고 견고한 장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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