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데뷔전 1
‘저 정도 턱은 충분히 넘겠지?’
자전거 페달을 세게 밟아 가속도를 붙인다. 도로에서 인도로 올라서려면 단번에 턱을 넘어야 하니까. 내가 놓친 게 있었다. 내 자전거는 접이식이라 보통 자전거보다 바퀴가 더 작다는 것. 그럼 턱을 넘어가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탓인지, 벌써 상황판단이 흐려질 만큼 나이를 먹은 것인지 따진들 무엇하리.
자전거가 기움과 동시에 최대한 몸을 가누려 노력하며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왼쪽 어깨를 굴려 어렴풋이 생각나는 낙법을 흉내 낸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왜 내 코에서 장마철 논두렁에서 흘러넘치던 흙탕물처럼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는 거지? 내 코가 바닥에 찍혔다고? 그래서 피가 나고 내 광대도 바닥에 가격당했다고? 그래서 왼쪽 뺨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이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라고?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제3자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겪으니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남편은 그야말로 제3 자의 시선으로 그 비현실적인 장면을 객관적으로 봤다. 도로를 쌩쌩 달리던 내가 갑자기 인도로 올라가려 할 때, 남편은 놀라며 생각했다.
‘왜 저렇게 빨리 달리지? 속도를 줄여야 할 텐데???!!!’
핸들을 꺾자마자 자전거가 기울었고 나는 ‘부웅’하고 날았다. 내가 나름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방어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안도하려는 순간, 가속도를 못 이긴 내 몸뚱이가 구르더니 내 좌측 광대와 코는 바닥과 찐하게 비쥬(양볼에 가볍게 키스하는 프랑스식 인사)를 나눴다.
다시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코를 틀어막았더니 아직 온기를 품은 미지근한 코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내민 물티슈를 받으며 나는 고맙다고 인사한다. 물티슈로 대충 중력의 법칙을 따르려는 코피를 콧속에 머물게 하며 연신 중얼거린다.
“오빠,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남편은 사색이 된 얼굴로 더 사색이 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코가 부러진 것 같다며 구급차를 부른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꽤 긴 시간 동안 여전히 나는 현실감각을 찾지 못한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3인칭 시점의 인물 셋이 더 있다. 바로 우리 아들들이다. 성격이 워낙 다른 셋은 엄마의 사고에 대처하는 모양도 제각각이다. 막내는 가장 가까이 들러붙어 가방을 가져가 들어주고 내 손과 팔에 묻은 피를 닦아준다. 둘째는 막내처럼 엄마를 돕고 싶지만, 선수를 빼앗겨 뒤에서 서성이며 엄마를 살핀다. 제일 앞서가느라 가장 늦게 엄마의 사고를 알아차린 첫째는 특유의 꺼벙한 표정으로 묻는다.
“엄마 괜찮아?”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려면 괜찮다고 말해야 하지만, 입이 마음대로 떠든다.
“안 괜찮은 거 같아.”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던 길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면서 저녁은 컵 쌀국수를 조심해서 끓여 먹으라고 한다. 나는 코가 깨지고 광대가 얼얼한 것만큼이나 아이들끼리 컵 쌀국수로 저녁을 때우게 된 상황이 속상해진다. 속으로 욕이 나온다.
‘바보같은 년, 똥멍충이. 어떻게 넘어져도 이렇게 넘어지냐. 이게 뭐냐.’
모기에게 충분히 피를 수혈해주고 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한다. 구급차만 타면 바로 병원으로 직행할 줄 알았는데 나를 받아 줄 응급실을 찾느라 또 한참 시간이 흐른다. 코뼈와 안와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성형외과 진료가 가능한 곳을 찾았는데 집에서 40분 거리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우리는 골절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뼈가 20도는 더 틀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덜컹거리는 구급차를 타고 40분을 달린다.
내 실수로 온 가족이 저녁을 굶고, 평온한 일상이 깨지고 가족들 모두를 놀라게 한 게 미안해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해. 내가 괜히 자전거 타고 가자고 해서. 저 자전거 당장 팔아 버려야지!”
울컥. 나는 고맙고 또 미안해서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말린다. 남편은 늘 나보다 넓은 사람이다. 내 무릎을 토닥이는 그의 손을 통해 미안함과 걱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전화로 아이들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는 조금씩 현실감각을 찾아간다. ‘그래,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치료받고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해야지!’ 자꾸 흘러내리려는 마음을 두꺼비집 만들 듯 다독다독 다져본다.
제발,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니길, 안와골절은 아니길··· 터무니없이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잡고 저렴한 승차감으로 멀미까지 앓으며 응급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