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데뷔전 3
두 개의 눈엔 충격의 흔적이, 두 개의 눈에는 불안이, 두 개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아직 둘째, 셋째는 그렇게 말해 준다) 얼굴이
물에 불은 만두가 되어 왔으니 충격이겠지.
그래도 예쁜 편이었던 엄마(첫째도 '엄마 정도면 괜찮지'라고 해준다)인데
얼굴의 반은 반창고로 칠갑하고 눈은 케데헌에 '사자보이즈' 같으니 걱정이 되겠지.
막내는 원래 질문이 많은 아이다.
보다 못한 둘째가 막내에게 지청구를 준다.
막내는 엄마가 괜찮지 않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급히 화제를 돌린다.
"엄마, 우리가 집 다 치워놨어~"
"그래, 어쩐지 집이 엄청 깔끔해졌더라~"
둘째도 거든다.
"엄마, 이제 청소는 우리가 다 할 거야~"
나는 그냥 조용히 웃는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스스로 청소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가끔 적당히 다쳐줘야 하나? 쩝.'
남편과 나는 밤 11시까지 쫄쫄 굶은 상태다.
슬플 때는 배가 고팠던 것 같은데 너무 놀랄 때는 배가 안 고프단 사실을 나는 처음 알게 된다.
덕지덕지 발라놓은 반창고 때문에 반 봉사인 데다가,
입도 크게 벌리기 힘든 상태라 더욱 입맛이 없다.
남편이 급히 해동해서 끓여 온 사골곰탕을 앞에 놓고
이 악몽 같은 상황을 곱씹고 있는데 언니에게 전화가 온다.
언니는 내게 '영원한 내편'이다. 무조건 내편인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중학교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언니와 둘만 이모집에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다.
이모는 우리를 알뜰살뜰 챙겨주셨고, 이모부는 한여름 무더위도 싹 가실 썰렁한 농담으로
우리를 괴롭(?)히긴 했으나 매우 친절하셨다. 눈치 보이거나 기죽지 않고 지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없는 상황에서 내게 언닌 엄마같이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내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바쁜 부모님 대신 언니가 왔고(멋쟁이 언니는 파란색 통바지에 주황색 점퍼를 입고
모든 이의 시선을 강탈했다), 나는 언니가 자랑스러웠기에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내 중학교 졸업식에도 부모님이 가장 바쁜 시기였기에 부모님 대행을 해주었다.
그날은 언니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중학교 졸업식이니
부모님이 오시길 기대했기에, 내심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날의 기억은 회색빛으로 남아있다.
친구들에 비해 좀 늦은 나의 첫 핸드폰도 언니의 깜짝 선물이었고,
떨어져 지내던 시절 내내 연애편지 쓰듯 언니에게 편지를 썼다.
첫째를 키울 때도 위기 상황마다 달려온 지원군은 늘 언니였고,
켜켜이 쌓인 육아 스트레스를 한 겹 한 겹 걷어내 준 사람도 언니였다.
앗, 언니 이야기를 하자면 그것만으로 10화 연재를 할 정도이니 여기까지만.
언니와 통화를 애써 피했다.
보나마다 눈물바다가 될 테고, 내 코도 눈도 울면 안 되는 상태이니까.
언니에게 울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막내가 울기 시작한다.
"아니, 막내야 너 울어? 왜 울어~"
"엄마 얼굴이... 엄마 너무 아플 것 같아서 흑흑"
우리 막내는 자주 갖은 심통과 짜증으로 나의 속에 불을 질러대지만,
가장 빨리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에 감응하는 아이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꾸역꾸역 눌러 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오름을 느낀다.
"야~ 왜 울어~ 엄마 괜찮아~ ㅠㅠ(사실 안 괜찮다)"
눈물이 흐르고 코에 힘이 들어가니 코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서둘러 코를 틀어막고 욕실에서 감정을 추스른다.
거울 속에 오징어 한 분과 마주한다.
'여보세요, 오징어씨! 더 못생겨집니다. 울지 마세요.'
울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울음을 참을 수 있는 힘이 더 세졌다.
참아야 할 일들이 자꾸 늘어나는데 다행이다.
울기 금지, 재채기 금지, 코 풀기 금지, 완전히 누워서 자기 금지, 크게 웃는 것도 금지,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숨쉬기(코로)조차 금지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