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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May 12. 2023

엄마도 사람인지라

마냥 강한 존재는 아니더라

고즈넉한 밤에 나 홀로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방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콜록-콜록-"

누가 언제 들어도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기침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든 생각은 '아뿔싸'

생후 15개월의 삶을 살고 있는 아들이 꿈속에서도 힘겨워하고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거 심상치가 않네 라는 생각과 함께 안테나를 높이 세웠다.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여보 일어나 봐, 아기가 열이나"

아침잠이 많은 나와 달리 새벽형인 신랑이 다급히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른 아침부터 울고 있는 아기를 들어 안았는데 몸이 불덩이라 놀랐다는 신랑의 말에 다니던 병원에 오픈런했다.

9시 진료 시작인 병원에 7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대기번호 19번 실화야? 조금 놀랐지만 놀랍지도 않을 일이었다. 도대체 저기 1번 아빠는 몇 시에 오신 걸까? 오늘도 궁금했다. 그리고 기다리면서도 제발 입원만큼은 피했으면 싶었다.


"폐렴이라도 잡고 가세요. 입원실 자리 나오면 바로 입실하세요"

아들은 감기만 걸렸다 하면 부비동염에 중이염이 같이 따라온다. 이번에는 횡격막에 생긴 염증으로 폐렴진단까지 받았다. 횡격막에 염증이 생겼다는 건 안 좋은 증상 중 하나라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단다. 또 작고 작은, 여리디 여린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고 링거를 연결했다. 울음 끝이 짧은 아들도 이 고통은 짧게 끝낼 수가 없으리.


그래도 아내와 아들이 편하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신랑은 1인실을 잡아줬다. 저번에 비해 무려 5만 원이나 올랐는데 나아진 건 1도 없는 병실에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편히 등 기대고 쉬어갈 곳으로 생각하고 온 건 아니지만 병실 생활 내내 바닥생활과 더불어 혼자 아이를 케어하면서 허리가 정말 작살날 것 같았다.


엄마 단둘이 병실에 갇힌(?) 아들은 온전히 엄마한테 의지했고 15개월, 걷다 못해 이제 뛰려고 폴짝 거리는 아들은 자유자재로 병동을 누볐다. 엄마는 노심초사 링거줄이 꼬일까, 팽팽하게 당겨질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아들은 또 엉킨 링거줄을 잡아당기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화장실 한 번 가기가 힘들었다. 볼 일을 보고 있는 내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 울었으니까. 쓰레기 한 번 버리러 가기가 힘들었다. 잠깐 나간 사이 링거줄을 잡아당기며 따라 나오려 했으니까. 방 안에는 쓰레기 냄새와 더불어 먹고 반납하지 못한 식기에서 나오는 음식물 냄새로 가득 뒤덮여 갔다. 나는 아기가 잠들기만을 기다렸지만 이 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아 점점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파서 힘이 들어서 엄마한테 계속 안기는, 매달리는, 징징거리는, 울고 마는 아들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속닥속닥 속삭이며 아이를 달래고, 토닥토닥 토닥이며 잠을 재웠을 텐데 병실에서는 집에서의 엄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2박 3일 중 첫날부터 사투를 벌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달라 밤새 내 코와 목에도 이상증세가 느껴졌고 이튿날 난 줄기차게 틈만 생기면 자리에 누웠다. 지금껏 아기한테 옮은 적이 없는데 나도 기력이 다했는지 감기를 옮아왔다. '차라리 잘 됐어, 내가 옮아왔으니 이제 아기는 나아지겠지'


자다 링거줄이 꼬여 아프다고 우는 아기를 내던지다시피 뒤집어서 줄을 풀었다. 엄마의 과격한 손길에 놀란 나머지 엉엉 울어버린 아들을 달래려 또 안아 들었다. 빨리 진정시켜서 재우려고. 10분이 1시간 같았다.  "제발 자 제발. 그만 좀 해 그만. 나도 힘들어. 엄마도 힘들다고. 아가야 엄마도 아파" 엄마도 아프다는 말이 더 서러웠던 걸까. 아프다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아기는 더 서럽게 울었다. 울고 싶은 건 난데.


평소 허리와 무릎 통증이 극심해진 나는 줄기차게 열심히 하고 있는 운동과 식단에도 몸이 나아지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고 이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루틴을 유지하면서 내 체력과 기력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입원생활 등의 일이 벌어질 때면 한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안 그래도 일상이 벅찬 내 몸뚱이가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지니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몸이 무너지니 마음이 무너지더라.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않으니 나도 괴물로 변해 있었다. 정말 폭발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아기를 거칠게 다뤘다. 이미 이성을 통제하는 기능을 잃어갔고 분노로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에 아기는 결국 무서움에 더 서럽게 울었다. 나와 신랑에게 온 아주 '귀한 손님'이 우리 아들이라던데 귀한 손님을 귀하게 대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불편한 심정인 엄마는 오죽하랴. 이날 참다못해 신랑한테 교대를 요청했다. 힘들어서 더는 못 있겠다고. 그리곤 금세 잠든 아들을 보고 또 마음을 달랬다. 오늘 밤만 더 같이 있어 보자고.


몸은 정신이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번 입원생활을 통해 느꼈다. 모든 것의 기본과 중심은 내 몸이고 내 체력임을. 일상이 너무 고달프다. 편하게 잠을 잤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기가 한 번 웃어주고 두 팔 벌려 엄마하고 달려올 때면 모든 게 녹아내리고 잊히지만 내 몸에 쌓인 것들이 함께 녹아 흘러가지는 않는 걸.


거의 반 미쳐버린 사람처럼 외래진료 호출에 진료실에 다녀왔다. 다행히 폐렴이 많이 나아져서 통원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진단. 부비동염과 중이염은 나아질 때까지 병원에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올레를 외쳤다. "저희 정말 집에 가도 되나요?" 반 미치다 못해 거의 죽어가던 나는 한 손으로 12kg의 아들을 번쩍 안아서는 룰루랄라 병동으로 돌아왔다.


아기도 답답했던 링거를 빼고 병동을 자유자재로 누볐다. 그제야 보였다. 우리 아기가 얼마나 작디작은 아기인지. 얼마나 엄마 품에서 안정을 취하고 싶어 했는지. 아픈 자신을 달래줄 사람이 엄마 밖에 없는 작은 사람. 퇴원 준비를 하면서 홀로 복도에 나가 놀고 있는 아기를 보니 사무쳤다. 조금만 더 버틸걸. 참을 걸.


근데 나도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힘듦을 엄마라는 이름아래 꾹꾹 눌러가며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의 화를 받아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기한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지 않으면 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입원생활. 정답은 없지만 옳은 답에 가까운 건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결론으로 매듭짓고 병원을 나섰다. 우리 다시 오지 말자. 우리 절대 오지 말자. 나 홀로 아기와 약속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


병실에서 나 홀로 사투하는 동안 영상통화를 하던 나의 엄마한테 참다 참다 터진 내 목소리를 들려주며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퇴원을 앞두고 다시 전화를 걸어온 나의 엄마가 아기한테 그러지 말라고, 엄마 밖에 더 있겠냐고, 그렇게 하면 나중에 트라우마 생긴다고, 엄마란 다 그런 거라는 말에 또 화가 나서 버럭하고 말았다.


"엄마 나도 사람이야, 나도 힘든데 어떡하라고. 나도 지쳐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어떡하라고!"

나는 마냥 강한 엄마는 못하겠다.


미안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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