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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May 20. 2023

처방약은 치킨입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다 내려두고 싶습니다. 그만하겠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 끝에 내가 속해있던 그룹에 안녕을 고했다. 지난 200일 + 이번 20여 일 동안 완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작은 목표를 달성한 데 있어서 만족하기로 했다.

산후 다이어트로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면 된 거 아니야?라고 지친 나를 다독이기 바빴다. 그래서 단톡방을 나왔다.


우울했다.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상이. 지쳐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니 들이닥치는 바이러스들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아기를 케어하기가.  고달팠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매일 끼니를 챙기며 식단 인증을 하고 없는 시간 쪼개 운동 인증까지 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아 나 지금 하나도 즐겁지가 않구나. 괴롭구나 지금’

그래서 가장 오래 하고팠던 것이었지만 지금 가장 심리적으로 지쳐가는 운동&식단 프로젝트를 제일 먼저 그만뒀다. 하루 중 나에게 가장 집중하는 일들을 내려뒀기에 마음은 썩 좋지 않았으나 개운했다.


다음 주 이사를 앞두고 밥 먹는 시간, 물 챙겨야 하는 타이밍, 운동을 사수해야 하는 시간 등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방을 뒤엎어 짐정리를 시작했다.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내 나름의 대장정에 함께한 동지들은 신랑이 사다준 아이스바닐라라떼와 파이형 케이크들이었다. 그래도 이 내려앉은 기분은, 무기력해진 나의 마음은, 어디에 서있는지도 모를 나의 존재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 매운 거 먹고싶어“

방 정리를 끝내고 나와 다리에 매미처럼 매달려 안아달라 눈을 찡그리는 아기를 번쩍 들어 안고 한 첫마디였다. 야식이라면 미간에 삼지창 심고 잔소리하던 내가 스스로 야식이 땡기니 메뉴를 찾거라 하고 있으니 우리 신랑 손가락에 날개 달고 배달어플을 훑기 시작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라고 소리치며.


아기를 재우고 정적 속에 각자 휴대폰을 하다가 주문한 치킨을 받아 들고 옛 상 앞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후라이드 순살치킨 한 조각을 소금에 콕 찍어 입에 넣었더니 혀끝을 톡 쏘는 듯한 짠맛이 입안을 감쌌다. 우울? 무기력? 고달픔? 그게 다 뭔디? 그 누구보다 전투적인 젓가락질을, 현란한 소스 찍기 스킬을 선보이며 뒷감당은 내일의 내가 하기로 굳세게 다짐했다.


요즘 변해도 너무 변한 내가 무섭고 두려워서 정신과에 가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볼케이노맛 치킨 한 조각에 모든 게 끌올 되었다. 이렇게나 단순한 사람이 밤마다 나 홀로 엉엉 울면서 한탄을 하며 터져 나오는 기침을 쏟아내느라 배를 부여잡았다.


결론은 그간 먹고 싶은 걸 마음 편히 먹지 못해서 생긴 마음의 병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멀쩡한 사람 정신과에 앉아있을 뻔했는데 단번에 치유되다니. 마지막으로 치킨무로 입가심을 하고 뒷정리 후 누웠다. 헛웃음이 나왔다. 마음 한켠을 치킨으로 달랠 줄이야, 그래 행복하면 장땡이다!


내일 공복 몸무게는 측정 안 하기로 한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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