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여름의 시작
9년 전, 사직서를 내던지고 떠난 유럽여행 중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파리에서 니스로 넘어온 첫날부터 날 격하게 환영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 녀석은 바로 유럽 모기.
유럽에서는 베드버그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주 큰 경기도 오산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최악 중의 악은 진짜 여름모기였다.
첫날 냉장고 바지를 입고 잠을 청했는데 이 바지가 엄청난 화근이었다. 자면서 뒤척이는 동안 까끌한 냉장고 바지가 모기 물린 부위에 자극이 되었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뭔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아 미치겠다, 내 다리 좀 봐"
"허어!!!!!!! 왜 그래!!!!!!!"
니스 광장을 가로질러 곧장 눈앞에 보이는 약국으로 달려 들어갔다. 영어에 완전 까막눈인 날 대신해 내 친구는 아주 다급하면서도 강력하게 외쳤다.
"모!!!!!스!!!!!!키!!!!!!토!!!!!!!"
"O0O!!!!!!!!!!!!!!!!!!!!!!!!!!!!!"
프랑스 약사의 믿을 수 없다는 눈빛과 함께 오 마이갓스러운 떡 벌어진 입, 그리고 놀라움의 극치라는 듯한 현란한 손짓에 나는 허벅지만 내어 보였다. 왜 코리아물파스를 안 챙겨간 거야 나는.
바르는 연고를 하나 건네준 프랑스 약사는 나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진짜 큰 일이라도 난 듯한 표정으로 병원을 연실 외치는 약사에게 난 괜찮다고 되려 걱정 말라 안심시키고 연고를 받아 들고 나왔다.
안 그래도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광장 한 구석에서 미친 열감을 자랑하는 내 허벅지에 연고를 왕창 바르기 시작한 내 친구. 내 기억에 다음 나라로 넘어가서도 부기가 빠지기까지 한참 걸렸던 것 같다.
모기 물림 → 부어오름 → 붓는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 → 물린 부위에 따라 손바닥만 하게 부어오름 → 열이 나기 시작 → 물린 곳을 중심으로 땡땡해지기 시작 → 부어오른 부위 전체가 딱딱해짐 → 물린 부위에 물집이 생김 → 노란 진물이 터져 흐름 → 진물이 빠지면서 부기가 가라앉기 시작 → 흉터생김
모기에 물리면서 나아지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그래서 여름만 다가오면 어떻게 해서든 모기를 피하려 오두방정을 떨고 혹여나 윙~ 하는 소리만 들려도 그 녀석을 찾아 잡아 죽일 때까지 잠을 청하지 않기 시작했다.
물파스로도 가려움이 진정되지 않고 아파오기 시작하면 밤중에는 응급실을 찾아가기도 하는 스키터증후군.
스키터증후군이라는 말을 알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나와 같은 사례로 여름만 되면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되었다.
모기의 침으로 발생되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하루딘이라는 성분이 있는 모기의 타액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는데 예방방법은 안 물리는 게 최고. 알레르기 반응이 과도한 경우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호흡곤란과 구토가 올 수도 있다고 하니 모기 물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달걀 하나 심어놓은 듯한 붓기를 자랑하는 내 오른쪽 팔뚝에서 극심한 가려움이 느껴지고 있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모기대환장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에 분노도 함께 차오르는 중.
서늘한 가을이, 춥디 추운 겨울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괴로운 여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