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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Jun 27. 2023

재취업의 고배가 내 아기 때문인가요

다시 제자리


첫 취업에서 전공을 살려봤지만 내가 처한 현실 앞에 환경이 너무나 버거워 수습기간 정도만 하고 마무리를 지었고 전공의 연장선 어딘가에 다시 재취업을 하며 약 10년의 회사생활을 했다.


회사를 좋아했고 일에 자부심이 컸으며 마음 같아서는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었으나 결혼 후 부득이한 사정으로 퇴사를 했고 현재는 아내이자 엄마인,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아기 돌만 지나면 다시 재취업은 문제없다! 싶을 정도로 야심 찬 계획을 세웠건만 퇴사 후 취득한 자격증을 활용하기엔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잠시 장롱에 넣어두고 자리를 찾다 보니 가까운 곳에 전공도 살리고 내 경력도 살릴 수 있는 곳이 있어 지원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이 왔고 오랜만에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면접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간 지내온 회사 환경, 느낌은 온전히 달랐지만 10년 전 내 학교생활 느낌과 비슷한 회사의 분위기에 또 내심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내 경력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앞서 말했듯 이전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회사를 좋아했던 마음을 담아 정말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내가 결혼한 해와 올해의 갭을 계산하시더니 “아, 아기가 4살 정도 됐나요? 유치원 다녀요?”라고 물으셨다.


“아뇨, 결혼 후 바로 낳은 게 아니라서 지금은 16개월입니다.”

“아...”


짧은 한마디, 면접관의 표정을 보고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안 되는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이후 면접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비롯해 어린 아기 케어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면접은 단 시간에 끝났다. 그리고 예상대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면접 끝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걸으며,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기 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와 말로만 듣던 게 나한테도 오는구나. 겪어보니 되게 씁쓸하네. 내가 아기엄마인 게 엄청 큰 걸림돌이라는 게 맞구나’


8월 초까지 이력서를 받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해보고 싶은 일인데 정말 많이 아쉽다.


내 이야기를 들은 신랑이 아기 케어에 좀 더 집중해 보겠다고 했다. 어린이집의 SOS에도, 혹여나 또 생길 수도 있는 입원 등등 반차도 휴가도 야무지게 써서 내 사회생활에 크게 지장 없게끔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진짜 너무 고마웠지만 신랑이 외박하는 훈련 기간에는 아기를 맡길 곳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면접 본 곳의 출퇴근 시간은 아기 등하원과 너무도 달랐기에 아빠의 외박은 가장 큰 복병으로 작용될 법했다.


포기.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할 수도 있지만 여러 상황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건 사실이기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아기 등하원 시간에 맞춘 파트 아르바이트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직에 다시 나서고 있다.


내 경력을 살리는 곳을 찾아야 하나,

완전 다른 분야로, 신입으로 가도 되나,

그보다 시간이 맞는지가 우선이겠구나.


현실에 꽝! 부딪치고 난 뒤 나는 디지털노마드가 될 테야 하면서 이래저래 일을 벌인 것도 있는데 장기적인 계획으로 끌고 가기에는 당장의 목돈마련이 절실한 우리 상황에 디지털노마드는... 당장 뛰쳐나가지 않고 뭐해.


오늘도 다 잠든 고요한 새벽에 구인구직사이트를 정독하고 있다. 내가 아기 엄마라서 어려워질 일들은 아쉬운 마음을 손가락에 담아 잽싸게 스크롤을 올려버렸다.


아내이자 엄마로 살면서 잊고 지낸 나를 찾아오자는 마음도 컸던 재취업. 현실의 벽에 꽝 한 번 부딪치고 난 혹이 참 아프지만 어딘가 나와 맞는 곳이 있겠지, 좀 더 돌아가고 있는 거겠지 라며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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