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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Sep 08. 2023

"본인 몸에 만족하세요?"

할 수 있다X3


또 다이어트 시작을 앞두고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시작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똥타이밍이라고 젠장을 외쳤지만 괜찮아, 일주일만 잘 보내면 나에게 황금기가 온다고! 올레!




아기가 200일이 좀 지났을 때, 출산 6개월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야지 안 그러면 지금 갖고 있는 그 살 전부 내 살이 된다는 말에 헐레벌떡 다이어트를 했었다. 100일 동안 6kg을 감량해서 임신 전 몸무게로 복귀했다. 육아하면서 오는 현타에 다이어트는 슬럼프로 빠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만 잘해오고 있...나?


참고로 나는 서구형 체형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하체. 허리  아래로 골반이 크고 허벅지도 튼실한데 근력 1도 없는 승마살이 서로 엉겨 붙어 있는 데다 무릎 아래 종아리는 일자다리인, 발목은 가는 편이다. 난 내 하체를 해괴망측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 언밸런스함은 언제 봐도 적응 안 되리. (상체가 서구형이면 얼마나 좋아...)


매일 다이어트! 다이어트!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는 최애 아바라를 쭈압쭈압 마시며 행복에 겨워했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모델 한혜진 님이 출연한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역시 달달구리를 숨도 안 쉬고 흡입하면서.

 




와 방금 세척하고 온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내려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나는 다 벗고 씻는 내 몸이 보기 싫어서 거울에서의 시선을 빼앗고자 유튜브로 볼거리를 틀어놓고 온통 그 화면에 집중해서 씻곤 한다. 만족이 어딨어, 왜 이렇게 생겼냐고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근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송인 홍석천 씨의 말을 빌려 “아, X발, 내 몸 X나 죽인다”라는 말을 젊었을 때 해봐야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지금 구직 하나도 내 마음대로 안 돼서 짜증 나고, 내 뱃속으로 낳은 아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진짜 뭐 하나 내 뜻대로 안 되는 요즘에 내가 내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건 내 몸뚱이 밖에 더 있겠냐! 는 말이다. 맞잖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나 하나잖아?


막상 영상을 보다 보니 알고 있는 있지만 실제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없었고 나 또한 스스로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한혜진 님의 한마디가 그냥 뇌리에 박혀버렸다.

아기를 키우는 19개월 동안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나로서 이룬 것들이 무엇이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해온 게 무엇이냐 나에게 물어보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이룬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그럼 그동안 없었으니까 이제 만들면 되잖아, 간단하네 뭘!


당장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취직을 하는 게 맞지만 여건상 마음대로 직업을 가질 수 없기에 잠시 뒤로 미뤄두고 운동부터 하기로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그리고 칼을 빼들 듯 태블릿 펜을 빼들었다. 다이어트 식단은 먹은 걸 쓰는 게 아니라 먹을 걸 쓰는 거라 했으니.


내일 아침은 단백질 번을 먹고 운동으로 필라테스를 다녀온 뒤에는 통밀 토르티야를 만들어 먹을 거고 간식은 생략하며 물 1.5리터를 마실 거고, 저녁은 19시 이전까지 두부요리를 해서 아기랑 저녁식사를 함께 하겠다는 야심 찬(?) 식사 계획을 세웠다. 플래너에 기입하고 보니 벌써 내일 하루가 가득 채워진 듯한 기분에 괜히 미리 뿌듯해졌다.




임신을 하면서 다행히 살성 덕분에 배에 튼살은 1도 없었지만 까만 겨드랑이와 나이테처럼 자리한 목주름, 푸석한 피부와 좁혀지지 않은 흉곽, 처진 뱃살, 곧 배우 마동석 님과 겨뤄도 될 정도인 팔뚝, 담당의도 위태롭다 말하는 허리와 교정이 시급한 골반,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무릎, 골다공증이 코앞인 뼈의 상태와 현저히 낮은 빈혈수치. 내가 너무도 개선하고 싶은 현재 나의 몸상태이다. 당장의 몸무게는 중요치 않음을 일일이 나열하여 써보면서 나한테 다시 상기시켰다.


출산으로 바뀐 내 외모와 체형이 참으로 볼품없어졌지만 이게 원래 내 모습은 아니었다는 걸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없이 건강하고 어여뻤던 때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지난날의 나를 뛰어넘을 능력 또한 이미 갖추고 있다고.

몸이 바뀌면 주변 사람들이 바뀌고 멀리 봐서는 내 인생이 바뀐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는데 진짜 그럴까 라는 의문과 함께 그렇다는데 그럼 그 길을 가봐야 하지 않겠나 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솔까말 애도 낳았는데 내가 앞으로 못할 게 뭐가 있냐고 소리치면서 특유의(?) 엄마, 아줌마 파워를 쏟아내 보기로 한다. 계획의 설렘, 실행의 기쁨, 성취감의 감동을 기록이란 메모리에 차곡차곡 쌓아보기로 하자!




“본인 몸에 만족하세요?“

“네, X나 멋있죠?”

상상으로 미래의 나를 끌어당겨 봤다. 기분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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