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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Sep 06. 2023

머리 질끈 묶은 엄마가 되기 싫었어요


나를 찾는 여정을 담는 글을 기재하고 싶었으나 그래서 그 여정은 먹는 건가요...?






엄마가 된 사촌언니가 앞머리도 없는 올빽 머리를 하고 종종 모습을 보였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그냥 정말 닥치는 대로 잡은 머리끈 하나로 질끈 묶은 스타일로, 꾸밈이라고는 립스틱도 아닌 립밤을 열심히 발랐는지 입술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아가씨 때도 미용에 큰 관심이 없었던 언니이긴 했지만 엄마가 된 언니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언니를 마주한 그 순간은 '나는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도 부지런히 꾸미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결혼하고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지금 내 현재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봤을 때 언니의 모습과 디졸브 되었다.


"우리 언니 참 힘든 시간 보냈구나"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내가 오늘 씻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하면서 시간개념이 사라졌구나 라는 걸 느끼고 있다.


머리 감는 타이밍을 엿보는 게 이게 실화냐, 머리 말리는 시간 동안 다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아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 이후로 한 번도 짧게 잘라보지 않은 머리스타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감는 것도 일이고 말리는 것도 일이고 무수히 떨어져 나오는 기나긴 머리카락들을 주워 버리는 것도 일이다. 우리 집 청소기는 머리카락을 뱉기 시작했으니 아이고야.


머리숱도 미용실에서 깜짝 놀랄 만큼의 양을 자랑하고 있으니 웬만한 집게핀들은 내 머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전화선이라고 불리는 머리끈도 두세 바퀴 정도 돌려 쓰다 보면 순식간에 끊어지기 일쑤였다. 당고머리를 하고 다니기 힘들다. 목이 눌릴 것 같은 무게감 때문에.


벙거지 모자는 나의 분신이 되었다. 머리를 감든 안 감든 쓰고 다니기 때문에 남들이 봤을 땐 오늘도 머리를 안 감고 나온 엄마로 비칠지 몰라도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도 고민스러운 나에겐 거지존에 머물고 있는 길이가 거추장스러워서 늘 모자를 쓰고 다니고 있다.






아기가 아파 병원에 가보면 정말 다양한 엄마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키우면서도 캐주얼한 스타일링에 화장까지 완벽하게 겸비해서 내원한 엄마들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잠옷인지 외출복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내원하기도 하며 여기가 휴양지인가 싶을 정도로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는 엄마들도 보인다.


그중 나처럼 다이소에서 산 큰 집게핀으로 긴 머리를 말아 올려 꽂고 운동복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슬리퍼나 운동화를 신고 오는 엄마들도 있다. 아주 보통의 엄마들의 모습인 듯하다.


가장 되기 싫었던, 되지 말자고 다짐했었던, 왜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행색이 바로 나다. 이제는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 스타일링을 하는 내 손이 둔해졌고, 꾸민 내 모습이 약간 어색해지기 시작했으며 아기를 낳기 전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외모와 체형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울로 보는 내 모습도 잠시 난 또 어딘가에 흩뿌려둔 거지 앞머리 고정용 머리핀을 어디선가 주워 정수리에 꽂고 기나긴 머리카락들도 한 데 뭉쳐 말아 올린 뒤 집게핀으로 꽂아두고 스킨, 로션의 순서가 뭐냐 뭔가를 발라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맨 얼굴로 온 집안을 뒤집고 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만난 지 오래된 우리 언니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한마디 하겠지?

"거봐! 너도 결혼하고 낳아보니까 관리할 시간 하나도 없지!"






거울 보는 게 싫어지는 아기엄마로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오늘도 씁쓸한 위로를 건네본다.

'오늘도 바빴지, 힘들었니, 그래도 엄마로 산 오늘이 참 장하다'


모양도 색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이지만 망가진 집게핀을 살 때면 내 기준 가장 크고, 가장 예쁜 놈으로 한참을 고민하다 고르곤 한다. 얼마 전 벙거지 모자를 새로 살 때도 신랑한테 뭐가 제일 예쁘냐고 묻고 가장 어울리는 걸로 골라왔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나를 위한 거니까.


무거운 머리를 감고 선풍기에 머리 말림을 맡긴 채 내일은 핀 찾느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미리 핀을 챙겨본다.


음... 질끈 묶기 싫으면 이 머리들을 다 쳐내면 될 것 같은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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