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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Mar 19. 2020

씨디

정성 주고받기

이제는 핸드폰 어플로 1초 만에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고, 다운받지 않더라도 유튜브 같은 곳에서 언제나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더 이상 DVD를 살 필요도 없고 CD를 살 필요도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물리적 상품과 인터넷 상품의 비중이 반반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인터넷 상품 위주로 바뀌었다. 그 변화가 급격 해질 때쯤 우리 집에서도 넘쳐나는 DVD와 CD를 모두 처분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공간만 많이 차지하고 실제로 듣는 일은 거의 없으니 버리자는 부모님에 대항하여 대부분의 물건을 지켜냈다. 내 논리가 통한 것인지, 내 고집 불통 성격이 통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켜낸 CD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내가 지켜낸 CD들.

 

나도 어플을 통해 손쉽게 음악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씨디플레이어는 자주 고장 나기도 하고 씨디도 스크래치가 잘 나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줘야 하는 번거로움 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만 음악을 자꾸 듣다 보면 음악에 무심해진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가 꼭 이 노래가 아니어도 되는 상황이 된다. 이 노래, 저 노래, 이 가수, 저 가수가 섞이고 전혀 듣고자 했던 노래가 아니어도 그냥 섞여 듣게 되고, 익숙해진다.

 

CD 사서 틀고 관리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그만큼  많은 정성을 주고받을  있다. 먼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엄청난 고심 끝에 골라 조심해서 꺼낸 다음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CD 담겨있는 케이스를 한번 보고, 트랙 리스트도 한번 . 그러면  속에서  CD 만들기 위해 오갔던 수많은 대화들을 살짝 엿볼  있다. 앨범 재킷에서 어떤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지, 트랙 리스트를 어떻게 배치하여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그리고  모든 것을 어떻게 하나의 CD 꾹꾹 눌러 담을지. 확실히 200개가 넘는 플레이리스트  하나의 노래로 들을 때보다는  많은 것이 들린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가지고 있는 씨디중 가장 오래된 것 같은 유재하 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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