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지우는 후회
내 몸에는 총 네 개의 타투가 있다. 어마어마한 타투는 아니고, 크기가 제일 작은 것은 직경 1CM에서 제일 큰 것은 직경 5CM 정도 되는 오밀조밀한 것들이다. 이렇게 작은 타투를 본 타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렇게 작은 걸 타투라고 해? 그냥 낙서인 줄 알았어" 또는 "헉! 진짜 문신이야? 후회는 안돼?"
첫 번째 유형의 질문에는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고, 두 번째 유형의 질문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나는 후회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에 대하여.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돈을 허투루 쓴 것을 후회하고, 인생을 더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더 기다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섣불리 판단해버린 것을 후회하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언제나 후회가 가득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너무도 당연히 타투가 남길 후회에 대해 많은 시간 고민했다. 처음에 왜 하고 싶어 졌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 오로지 그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오랜 고민의 시간이 허무하게도 나의 첫 타투는 그다지 큰 확신 없이 친구의 부추김과 괜한 허세의 힘으로 새겨져 버렸다. 타투 기계가 내 몸에 닿아 있는 그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후회를 반드시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술이 끝나고 몸에 새겨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이제 영원히 못 지운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더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나에게 주는 힘은 더 커져갔다.
아주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내 타투는 완벽하지 않다. 크기가 조금 컸어도 좋을 것 같고, 위치가 조금은 내려갔어도 좋을 것 같고, 색이 조금은 더 진했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내 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 타투한 부위를 지긋이 바라보며 찰나의 후회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어쩌겠어~'하며 옷을 걸쳐 입는다. 이런 짧은 후회와 빠른 포기의 훈련을 해주는 타투 덕분에 나에게 다른 후회들 또한 빠르게 지우는 습관이 자라나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지고 다녔던 인생의 짐들을 툭툭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타투를 더 새겨 넣었다. 조금 더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기 위해. 그 훈련을 해줄 친구들을 새기고 있다.
내 결론은 이렇다. 타투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후회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회가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배우기 위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