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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쌤 Nov 28. 2021

그만 놀고 집에 가고 싶어

보를 낸 아이보다 느리게 주먹을 내는 사람이

초상났어!


만장 들고 상여 끝에 서서 장지까지 가면 500원을 주셨는데 겁 많은 나는 못하고 친구는 들었다. 대나무도 크고 굵었고 붓으로 휙휙 써놓은 깃발도 우리 키보다 훨씬 커 만장을 들면 뒤로 넘어질 듯했다.


동네에 초상 나면 어른들 따라 맨 뒤에 서서 만장 드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 유년의 기억은 거의 '하평'이라는 마을에서 '병길'이라는 이 친구 따라 방과 후 유랑하던 그림이다. 흰 상여도 꽃상여도 까슬까슬 종이 소리는 지금도 생생한데 만장 드는 일은 내겐 마치,


고인따라 나도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과 같은 느낌이었다.


허순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친정엄마처럼 좋아하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상가에 간 엄마를 기다리다 처음으로 떡을 먹었다. 상가서 온 떡. 그냥 먹을 수 있었다. 제사음식이나 상갓집 음식을 유별나게 입에 못 넣던 내가 처음 먹은 떡.


교회식 장례였는데 문 밖에서 친구와 나는 한 참 섰다가 만장을 받아 줄 끝에 섰다. 나도 섰다. 우리가 여름에 서리했던 복숭아나무가 있던 밭을 지나 조금 높은 산까지 갔는데 묘가 될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하나도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입관도,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도 다 들은 거 같다.


500원을 받았는데 어디에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외가든 친가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는 쓸쓸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하루였던 거 같다. 아직도 그 할머니 이름은 잊지 않았지만 중학생이 되고 하평 위의 마을 상평으로 이사를 가고 우리는 더 이상 만장을 들 일이 없어졌다. 상엿집 아제도 문을 닫았고 어느 순간 마을에도 장례식장이 생겼다.


거지가 왔어! 다리 밑에.


짚단 쌓아놓은 곳에 여성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무서운 소리를 냈다. 짚으로 이글루 모양을 만들고 겨울, 삼동을 지냈는데 마을에 와 밥이랑 찬을 얻어가셨고 우리는 가끔 얼음강에 썰매 타러 가면서 수건이랑 무엇을 짚 앞에 놓고 뛰어 도망갔다. 나쁜 것은 아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는 공사장에서 주운 철사와 합판으로 썰매를 만들었다. 막대기에 못을 거꾸로 꽂아 손잡이까지 만들면 무릎을 썰매에 얹고 기도하듯 앉아 얼음강에서 겨울을 보냈다. 물에 빠져 죽은 개 얼굴이 반은 얼음 속에 반은 밖에 있는 모습을 만나고서야 나는 썰매 타기를 그만두었다.


그만 놀고 집에 가고 싶어!


열 살부터 열두 살까지 동네를 하루 두 바퀴 돌며 놀았다. 숙제 대충 해놓고 빨랫줄에 걸린 수건 하나 챙기면 입술이 시퍼레지도록 물에서 나올 줄 몰랐다. 따뜻한 돌 하나 주워 귀에 대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기대면 귀에 들어간 물이 쏙 빠져나갔다. 배고프면 때아닌 고구마밭에 맛없고 크고 껍질 두꺼운 씨고구마 하나 만나 나눠 먹으면서 집으로 왔다.

밥이 끓기 전 아랫 담 윗담 대표 5인방의 릴레이가 있었는데 우리 집을 출발로 현주 집 남주 집을 돌아 신작로로 빠져나오는 달리기를 했다. 무얼 위해서도 누구 때문에도 아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 돌아가신 날에 거지가 왔다.

진주 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우리 엄마 장례식에 거지가 왔다. 웅성웅성 사람들 소리가 갑자기 커졌고 나는 얼른 고기와 술을 드렸다. 그 아저씨의 냄새와 눈 빛이 기억난다.


아저씨도 집에 어서 가세요,라고 말해줬다.


...... 손을 털면 묻은 냄새가 떨어졌다 서로 미움이 있거든 죽을힘을 다해 화해하라고 말한 사람이 떠나든 남든 혼자만 잘 살지 말자고 말한 사람이 떨어졌다...... 거지 밥주머니 같은 가방을 열면 실감 난다 장례식장에 온 거지처럼

오늘 끝까지 냄새난다...... 그러니 같이 통곡할 시간이다...... 술과  술과  고기와 고기를 주십시오 보를 낸 아이보다 느리게 주먹을 내는 일처럼 상가에 온 거지를 일단,...... 각 방 쓰고 각자 살고  이보다 더 멀어지는 거

 내가 된다는 것 아주 잘 알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나의 시, <그러니 같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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