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재와 석민재가 서로 '모조품'이 라거나 '사기'와 '조작극'이라 인식하는 시그널들이 눈에 띄는 바. 잠든 사이에 '석민재'를 갖다 버리는 것도, "손가락에 반지"를 몰래 빼 버리는 것도.
"내가 나를 자꾸 잠입"하는 것도 모두 석민재들 사이에 일어난 희비극이다. '자화상'인 동시에 '초상화'인 이 양측의 불화와 긴장을 들여다보거나 조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여러시편들은, 스스로 행방불명된 이름과 아주 멀리 도망친 황폐한 시공간인 복수의 석민재들을 공유하는데, 이 강제와 분열에 깊이 관여한 '히틀러라는 세계는 지금 여기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극단 포스터 작가가 그려준 나
"꼬리를 자른다고 / 지나간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 "만성적 슬픔"들은 전설도 소문도 아닌 실재인데 그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은 의외로 심각하지 않다. "꾹꾹 숨겨 놓은 내가 터져 나와 웃지요."
아이만 많이 낳아 미안한 시인은 때로는 스스로 가볍게 천대함으로써, 때로는 노골적으로 "랄, 랄, 라" 웃으면서 간결하고 빠르게 '히틀러'를 가른다.
명랑하지만 유쾌하지 않고 속이 빈 듯하지만 들어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꼬리가 꼬리를 무는" 가편들은 어느새 우리 옆구리에 총구를 들이댄다.
시인은 말한다. "나랑 같이 걸어 주실 수 있습니까". 러시안룰렛처럼 "절벽 끝에서" "노는" 이것이 우리가 쓴 복면의 실체를 드러내는 시인의 방식이라면, 그 총구를 "핥아 보고 싶은 걸 참느라 안간힘을" 쓸 마음도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