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박태하 <전국축제자랑>을 읽고
<전국축제자랑>의 부제는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이다. 그렇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김혼비와 박태하 작가가 K-스러움에 누구보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황당(왜 저래?)과 납득(왜 저런지 알겠어!)이 엉켜들고, 수긍(저럴 수밖에 없겠네)과 반발(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과 포기(그러든지……)와 응원(이왕 이렇게 된 거!)이 버무려진 뭐 그런 느낌”
나도 K-축제를 찐하게 즐겨본 적이 있다. 속초에 놀러 갈 때마다 들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민속예술제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한복 입은 할아버지들이 진행하는 가마니 짜기 체험부터 볏짚으로 계란 꾸러미 만들기, 손글씨 작품 전시,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아트 플로깅 전시 등으로 그 작은 광장이 꽉 차 있었다.
그냥 가려다가 ‘가마니 짜기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며 실망한 할아버지들의 대화를 들으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도 없이 내 인생 첫 가마니를 속초의 어느 마을에서 짜보게 되었다. 가마니를 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라 나 같은 가마니 초보는 혼자서 할 수 없었는데,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쉬운 역할을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기분이 안 좋아지기는커녕 ‘이게 바로 한국 축제지’하는 마음에 ‘허허’ 웃어넘겼다.
50명 선착순이라는 말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가마니 짜기 체험은 볏짚 몇 개를 옮기니 끝나버렸고, 자연스럽게 바로 그 옆으로 넘어가서 볏짚으로 계란 꾸러미 만들기를 했다. 나중에 사용할 일도 없을 거 같은 계란 꾸러미를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바로 앞에 있는 무대에서 개막식이 시작했다. 이런 작은 축제에도 중요하신 분들은 많이 오셨었다. 소개가 지루해질 때 즈음 다음 순서로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시 낭독 시간이 있었다. 노란색 등산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올라와 본인이 쓰신 시를 낭독하는데, 누가 보기에는 대단한 무언가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것은 곧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류 귀결되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K-스러움이란 너무 뻔뻔해서, 너무 혼란스러워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너무 짠해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미워할 수 없는, 수식하는 형용사에 왠지 '너무'라는 단어가 꼭 있어야 할 거 같은, 어떤 때는 거부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닌,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것이다.
이번 설날에 K-명절을 세계 겪어서인지 최근에는 K-스러움에 질려있는 상태였는데 책을 읽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던 누구보다 K-스러움을 즐기는 나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경남 의령의 의병 제전에서 의병 출전 퍼레이드에 참여한 부분을 읽을 때면 눈물이 날 뻔했고, 영산포의 홍어와 산청의 곶감을 먹어보고 싶어졌고, 내가 만약 청주의 젓가락 페스티벌에서 젓가락으로 고무공 빨리 옮기기 대회에 나간다면 이길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다음번에 또 K-축제를 찐하게 즐길 기회가 있다면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