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6일 여행기
2022.09.30
Cortina D'ampezzo
숙소 - Rifugio Auronzo
오늘은 5개의 봉우리를 뜻하는 친퀘토리 근처에 있는 스코이아틀리 산장부터 시작해 누불라우 산장, 아베라우 산장을 지나 Passo Falzarego까지 트래킹하고 아우론조 산장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길어야 5시간 정도고 길도 험하지 않다기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마냥 기대되고 신났다.
1박 2일 동안 사용할 짐만 간단히 챙겨 택시를 타고 스코이아틀리 산장으로 갔다. 구글 지도에서 괜찮아 보이는 여행사에서 예약을 했고 50유로였다. 산장까지 리프트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택시 비용이 차이가 나지 않아 차를 타고 산장 바로 근처까지 올라갔다. 택시는 이동한 거리나 시간으로 따지면 비싼 금액이었는데 코르티아 담페초에서 친퀘토리까지 가는 다른 이동 수단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저녁에 코르티아 담페초에서 Passo Falzarego까지 20키로가 넘는 길을 찻길 따라 걸어왔다던 친구들을 만나긴 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구름이 자욱하게 껴 바로 앞에 있는 산도 보이지가 않았다. 가끔씩 구름 사이로 보이는 주변 풍경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풍경도 엄청났다.
친퀘토리는 산 위에 있는 바위였다. 특별한 특징 없는 동산 같은 산 위에 바위가 있어 더 눈에 띄었는데 마치 누가 어디서 바위만 똑 때어서 산 위에 놓아둔 거 같았다.
오늘 걷기로 한 루트는 워낙 유명한 코스다 보니 방향 표시가 잘 되어있다고 했는데도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중간중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비수기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어려웠고, 구름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불라우 산장을 가기 위해서는 친퀘토리를 마주 보고 있는 바위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중반까지는 괜찮았다. 고도가 높아서 산에는 눈이 벌써 왔는데 날씨가 춥지는 않아 길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조심히 갈 수 있었다.
도중에 야생 사슴때가 뛰어다니는 걸 보기도 했다. '내가 엄청난 곳에 와있구나'하는 생각에 들떠 더 열심히 걸었다.
가기 전에 찾아봤을 때는 누불라우 산장이 그렇게 멀지 않고 가는 길도 괜찮다고 했는데 길이 점점 험해졌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본 표지판이 누불라우 산장을 가리키고 있어 표지판을 따라 바위 산을 올랐다. 막상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더 이상 가지 못할 거 같은 수준이 되자 이제는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해저버렸다. 무조건 앞으로 가야만 했다. 길이 얼마나 험했나면 딱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고 바로 오른쪽은 낭떠러지였다. 구름은 더 많아져 낭떠러지 밑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었나 싶다.
앞으로 가 야할 길은 경사가 너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올라가는 거였다. 사다리가 나왔을 때부터는 산소가 모자란 거도 아닌데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출처: Petr Podroužek Amazing day in the Dolomites - Via Ferrata Ra Gusela
누불라우 산장은 문이 닫혀있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올라온 길로는 내려갈 수 없어 헬기를 불러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구름에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길이 보였다. 올라온 길 맞은편으로 아주 잘 만들어진 길이 있었던 거다! 누불라우 산장으로 가는 길이 크게 2개가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클라이밍 장비를 갖추고 헬멧까지 쓰고 가야 하는 위험한 길로 올라간 거였다.
그다음부터는 주변 풍경이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산에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Passo Falzarego까지 가는 길이 좋지는 않았지만 방금 갔던 길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Passo Falzarego에서 라가주오이 산장을 가는 케이블카까지는 찻길을 따라 걸었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산장에서 보는 풍경이 멋있다기에 인기가 많다던데 운이 좋게도 하룻밤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날씨가 더 안 좋아지더니 막상 산장에 올라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풍경을 보러 가는 곳에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다니...! 그저 내일 날씨가 좋기를 바랄뿐이었다.
왠지 산장이라고 하면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자마자 환영해 주며 따뜻한 차와 직접 만든 쿠키를 줄 거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라가주오이 산장은 (당연하게도) 그냥 상업적인 호텔이었다. 일하는 직원 모두 젊었고, 모든 것이 돈이었다. 심지어 마시는 물까지 돈을 내야 했다. 샤워도 개인실을 사용해 무료였지 도미토리에 자게 되면 추가로 돈을 내야 된다고 한다.
산장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어 저녁과 아침이 포함된 하프 보드로 예약을 했다. 밥을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합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공통점이 많은 친구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어 심심할 뻔한 산장에서의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