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6일 여행기
2022.10.01
Cortina D'ampezzo, Ortisei
숙소 - Garni Dolomitenblick
워낙 힘든 하루를 보내서 어제는 평소보다 빨리 잠에 들었지만 새벽 2시쯤 일어났다. 그리고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 같으면 책이라도 읽었겠지만 큰 짐은 코르티나 담페초 숙소에 놓고 와서 할 게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어제 걸었던 위험한 길이 계속 생각났다. 마치 다시 그 상황에 놓인 거 같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 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내다봤는데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준비를 다 하고 밖에 나와 있었다.
잠깐 봤는데도 예상치 않은 풍경에 나도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나갔다. 어제는 구름에 갇혀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풍경이 숨어있었다니! 해는 나오기 전에 하늘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보고 있어도 아쉬운 풍경이었다.
산장에서 같이 하룻밤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타 비아1 코스를 걷는 듯했다. 나는 나머지 사람들과 어제 산장에 올라가면서 탔던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오늘은 오르티세이로 이동하는 날이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그냥 오르티세이로 가는 이동도 힘든데 굳이 트레 치매를 들리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트레 치매를 가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았다.
먼저 케이블카 내린 곳에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택시를 타고 이동한 후 도비아코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미리 택시를 부르지 못해 도비아코로 가는 버스 시간을 못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버스는 2시간에 한 대 있어 (망할 비수기) 이 버스를 놓치면 트레 치매는 못 갈 수 있었다. 택시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역주행과 지름길로 버스 시간에 맞춰 도착하긴 했는데 10유로를 더 달라고 했다.
도비아코에서 트레 치매는 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다. 오르티세이로 가기 위해서는 트레 치매에서 다시 도비아코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트레 치매 입구에 있는 아우론조 산장에 양해를 구해 가방을 맡긴 후 트래킹을 시작했다.
라바레도 산장까지 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쉬운 길이었다. 원래는 로카델리 산장까지 가서 트레 치매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다던 뷰포인트까지 가고 싶었는데 시간상 가지 못했다.
어제의 친퀘 토리와 오늘 아침에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본 풍경을 보고 나서인지 트레 치매는 앞의 두 곳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트레 치매보다는 주변에 하얀 돌들이 기억이 남는데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후가 되어가니 구름이 많아져 바로 앞에 있는 트레 치매도 보였다 안 보였다. 가끔 구름이 언덕을 따라 올라오다 트레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걱정했던 장거리 이동이 2개 있었는데, 하나는 뮌헨에서 코르티나 담페초까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오늘 하는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오르티세이로의 이동이었다. 코르티나 담페초와 오르티세이는 근처 도시인데도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무려 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저번에도 걱정한 거에 비해 쉽게 이동했던 거처럼 이번에도 밤을 설쳤던 게 무색하게 3번의 환승을 잘 해냈다.
하지만 진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막상 오르티세이에서 숙소와 먼 정류장에 내려 10kg가 되는 가방을 메고 30분 이상 등산을 해야 했다. 그 정도 되니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오르티세이는 코르티나 담페초와는 아예 다른 도시였다. 같은 돌로미티로 묶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돌로미티를 스위스 알프스와 프랑스 몽블랑과 비교하던데 딱 그 느낌이 났다.
코르티나 담페초에는 마을을 둘러싼 뾰족 산들이 있었다면 오르티세이도 근처에 산이 보이긴 했지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마을 중간중간에 있는 아름다운 초록색의 들판이다. 소와 양들이 무심하게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