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6일 여행기
2022.10.04
Bologna, Florence, Panzano
아침 - Sfoglia Rina
저녁 - Antica Macelleria CECCHINI
볼로냐는 탑의 도시라고도 한다. 도시를 걷다 보면 여러 탑들을 볼 수 있는데 오래전 귀족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가장 많았을 때는 몇 백 개였다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지고 몇 십 개만 남아있다. 그중 중앙 광장에 있는 two towers가 유명한데 두 개의 탑 중 하나가 잘려있었다.
탑 옆에는 대성당이 있는데, 성당을 화려하게 짓다가 돈이 부족해져 윗부분은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래도 건물인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치 전혀 다른 두 건물이 합쳐진 거 같은 성당은 아직 공사 중인 거 같았다.
볼로냐를 떠나기 전에 간단하게 밥을 먹기로 했다. 중앙 광장 근처에 꼭 가보고 싶은 음식점이 있어 가봤는데 아쉽게도 아침 장사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인들이 가게에서 직접 만든 다양한 파스타 면과, 뇨끼 등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아쉬운 마음에 언젠간 먹겠지 싶어 라자냐를 샀다.
짧은 볼로냐 구경을 마치고 피렌체로 향했다. 오늘부터 7일 동안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필요한 차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외국에서는 한 번도 차를 빌려본 적이 없어 고민을 했는데, 토스카나 지방은 도저히 차 없이는 정해진 시간 내에 가고 싶은 곳을 다 가지 못할 거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차를 빌린 사람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내가 예약한 차를 안 준다는 거다. 나도 도요타를 예약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차를 받았다. 차를 빌리는 과정이 정신없기도 했고, 첫인상도 나쁘지 않아 괜찮았는데 막상 차를 운전하니 차 자체가 가볍고 브레이크가 잘 걸리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발에 힘을 줘서 브레이크를 꼬오옥 눌러야 했다.
차를 운전해 처음 방문한 곳은 안티노리 와이너리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피렌체 근처에 있고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나는 투어는 하지 않았고 테이스팅으로 몇 잔 시켜 조금씩 마셔봤다.
와이너리 자체는 모던하고 멋있는 건물이었는데, 테이스팅하는 공간이 좁고 의자가 없어 불편했다. 테이스팅에서는 회전율을 높게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아쉽기는 했다. 그리고 와이너리라기에 주변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이 곳은 그냥 투어와 테이스팅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던 거 같다.
운전을 하다 보면 유명한 뷰포인트가 아니어도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운전하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다가 멋있는 곳이 있으면 잠깐 차를 멈추고 나와 구경하고 다시 차를 타고 가는 걸 반복했다. 그래서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할 땐 항상 예상 시간보다 목적지에 늦께 도착하곤 했다.
20대 초반, 첫 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 유럽 소도시를 여행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는 토스카나 지방에 본인만의 철학을 가진 정육점 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내용이 강렬해서인지 몇 년이 지나고도 잊히지 않았고, 넷플릭스 <Chef's table>를 보고 그 도시가 판자노의 다리오 체키니의 음식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정육점을 운영하게 된 다리오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정육점 주인으로서, 그리고 동물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동물이 마지막까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로 버리는 것 없이 모든 부위를 다 요리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와 그의 음식을 먹기 위해 작은 마을 판자노로 모이는 것이다.
판자노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음식점으로 걸어가는데 내가 여기를 거의 10년 전에 알았고, 2달 전에 예약해 지금 아무런 문제 없이 (약간의 몸의 이상이 있기는 하지만) 가고 있다는 게 감사했다. 숙소 주인 할머니께서 오늘이 본인 생일이라 점심에 다리오 체키니 음식점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기에 더 기대가 커졌다. 현지인이 생일파티를 하는 곳이라니…!
판자노는 중심부에 음식점이 2-3개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중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가 바로 다리오 체키니 음식점이었다. 이곳에서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에 밖에서 와인과 빵을 먹는데, 그중 다리오 체키니가 있었다. 수줍어하며 같이 사진을 부탁했는데 “Carne!”하며 웃어주었다.
다리오 체키니의 음식 철학 중 하나는 모두가 큰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며 먹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이번이 2번째라는 미국인 4명, 벨기에에서 온 2명, 이스라엘에서 온 2명이 있었다. 처음에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먹는 데 우리 모두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다양한 배경을 가졌지만어색함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음식은 총 5 종류가 나왔다. 가장 맛있었던 건 타르타르와 등심이었다. 고기에는 특별히 간이 되어 있지 않아 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또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접시를 받을 때는 배가 부르기보다는 물려서 더 이상 먹기 힘들었다.
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신 테이블에 위에 야채와 콩, 구운 감자를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끼안때 와인을 제공해 주는데 나쁘지 않았다. 사실 여기는 맛 때문에 온다기보다는 경험을 하러 오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먹는 중간에 다리오 체키니가 와서 인사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직접 고기를 굽고 서빙까지 해주었다는데 이제는 손님들에게 예의를 차리는 정도만 해주는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도 변한 거겠지. 시라쿠사의 샌드위치 집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이곳도 다리오 체키니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 다리오 체키니가 더 이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