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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Jan 07. 2024

모두가 돌아간 히타에서 하룻밤

일본 소도시 여행

히타는 작은 교토 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진격의 거인 작가의 출신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히타를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삿포로 맥주 공장 때문이었다.


히타에 맥주 공장이 들어선 이유는 히타가 물맛으로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히타 물로 만든 히타 천령수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식품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 대회인 Monde-Selection에서 몇 번이나 우승하기도 했다고. 그런 물로 만든 맥주라니. 기대가 되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 역에서 히타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기차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예매한 기차는 후쿠오카에서 유후인까지 가는 유후인노모리라는, 영화에서 나올 것만 같은 아기자기한 초록색 기차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던 거였다.


기차에서 오니기리를 하나 먹고 잠시 자고 일어나니 히타역에 도착했다. 10명 정도가 내렸던 거 같다. 히타역 앞에는 Hita 글자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데 내린 사람들 모두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도 찍고 싶었지만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i 없는 Hita만 찍었다.


I가 없는 HITA

히타에서 (한국) 여행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음식점은 장어덮밥을 먹을 수 있는 센야이다.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여행객들이 너무 많은 곳을 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히타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가츠동


영업 중인지 확실하지 않은 문을 조심히 열어보니 의외로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는 야키소바를 먹으려고 갔지만 손님들이 모두 덮밥 종류를 먹고 있어 나도 가츠동을 시켜보았다. 맛은 평범했지만 특유의 일본 분위기가 나는 식당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삿포로 맥주 공장 걸어가는 길 (룰루)


히타역에서 삿포로 맥주 공장까지는 걸어서 45분 정도 걸렸다.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길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행복하게 걸었다.


삿포로 맥주 공장 걸어가는 길 (랄랄)


길거리 시골 풍경, 날씨, 지나가는 사람들, 한가로운 동네 풍경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삿포로 맥주 공장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미리 예약 하면 공장 투어를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목적은 시음이기 때문에 나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삿포로보다 맛있었던 에비스


가장 먼저 삿포로부터 시켜보았다. 맥주 공장에서 마셨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깔끔함과 시원함이 너무 좋았다. 유일하게 혼자 여행을 온 게 아쉬었다. 같이 ‘잔!’을 하고 싶었는데. 두 번째 잔으로는 에비스를 시켜보았다. 캔으로 마셨을 때는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었는데 삿포로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


혼자서 마시니 아무리 책을 읽으며 천천히 마시려고 했어도 속도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2잔만 마셨는데도 술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다시 시내까지 걸어가야 하기에 적당히 마셨다.


숙소는 마메다마치 끝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쉴 틈도 없이 다시 나왔다. 마메다마치에 있는 대부분의 상점이 5시가 넘으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롤케이크가 유명한 Mameda roll sui, 1891년부터 양갱을 만들었다는 아카시 양갱 본점, 다양한 과일 모찌가 있는 Kyobashi까지.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샀다. 마지막으로 쿤쵸 술 저장고에 가서 저녁에 마실 사케 한 병과 일본식 식혜 아마자케도 구매했다.


당일치기 여행객들이 많은 여행지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언제그랬냐는듯 거리가 조용해진다. 나는 그 대비가 좋아 굳이 히타같은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이 도시의 비밀을 내가 알게 된 거 같은 기분이랄까.


모두가 돌아간 마메다마치

마메다마치도 쿤쵸 술 저장고도 문을 닫을 시간이 되니 걸어다니는 사람 한 명 없이 가끔 차만 한 두대 지나갈뿐이었다. 오래된 건물과 어두워지는 하늘이 어우러지며 평화로우면서 쓸쓸하고 외로운, 그렇지만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녁


저녁으로는 마트에서 산 회, 야채, 그리고 국을 먹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좋은 식사였다.


밤의 마메다마치


마지막으로 저녁의 마메다마치를 눈에 담고 괜히 진격의 거인을 본 다음에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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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으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강을 따라 뛰려고 했다. 하지만 점심부터 계속된 음주로 한동안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밍그적거리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어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왔다. 마메다마치는 일찍 여행을 시작하는 몇 명의 여행객들을 제외하고는 한산했다.


삿포로맥주 큐슈 히타 공장

히타 시내와 떨어져 있어 보통 택시를 타고 방문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도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다. 단, 자전거를 타고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없다. 쉬는 날이 종종 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오타코(お多幸)

동네 사람들이 주로 가는 음식점이었던 거 같다. 가족이 정성스럽게 요리 하고 대접해 주신다.


Mameda roll sui(豆田ロール粋)

이틀 연속으로 갔는데 첫날은 먹고 싶은 맛이 없었고 둘째 날은 휴일로 문을 닫았었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내 맛집 레이더로 판단했을 때 가게 분위기상 맛없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카시 양갱 본점(赤司日田羊羮本舗)

시식을 해보았는데 적당히 달콤한 게 맛있어서 하나 사고 싶었지만 배낭여행자가 사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쿤쵸 술 저장고(クンチョウ酒造)

다양한 사케를 시음하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사케도 좋지만 평소에 식혜를 좋아한다면 아마자케를 추천한다. 너무 맛있었다.


아마자케


Kyobashi(御菓子司 京橘)

모찌 가게이다. 딸기 모찌를 샀다고 생각했는데 매실 모찌였다. 매실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놀라 맛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버리지 않았던 걸 보면 괜찮았던 거 같다.


待鳥松月堂本店

다양한 화과자를 살 수 있다. 낱개로도 판매하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먹고 싶은 과자를 몇 개 골라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水処稀荘(すいこまれそう)

히타에서 머문 숙소. 마메다마치 끝에 위치해 있어 저녁에 마메마다치 거리를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혼자서 자기에는 조금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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