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기
20살,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썩 믿어버린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어딘가로 떠나야만 될 거 같았다. 당시에는 “배낭여행 = 인도”라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에 인도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다. 인도 여행자들 중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네팔까지 갔다 오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나는 인도 여행 일정을 도저히 수정할 수 없어서 네팔은 나중에 꼭 오겠다 다짐했다.
9년 후, 나는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는 주위 사람들도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박수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네팔을 간다는 게 실감 났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본 카트만두의 첫인상은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았다. 가로등의 불빛이 유난히 하얗고 밝았는데,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빛들이 많아지더니 은하수를 이루었다.
숙소에서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타멜로 가는 도중에 있는 큰 도로는 수십 대의 오토바이와 차들 그리고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언제나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인도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오랜만에 정신없음을 마주하니 쉽지 않았다. 거기다 도로는 공사 중이었고, 새벽에 온 비로 바닥은 진흙탕이었다. 아, 당연히 신호등은 없었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아침은 차분하게 먹고 싶어 치앙마이 느낌이 나는, 왠지 서양 사람들이 주로 갈 거 같은 OR2K라는 음식점에 갔다. 내가 고른 메뉴는 스무디 볼. 네팔에서 먹는 첫 끼가 스무디 볼이었다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혼란스러운 거리에 빼앗겨버린 정신을 다시 찾고 다시 여행을 이어서 할 용기를 주었다.
타멜 지역은 그렇게 크지 않아 그냥 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며 가장 놀라웠던 건 전깃줄이었다. 이러다 모두 감전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기에 기대했던 아산 바자르. 원래도 정신없는 길거리가 더 정신없어 제대로 구경 하지 못했다. 그 정도의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음식점에서 라씨를 마셔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래, 이게 본토의 맛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더르바르 광장은 마치 비둘기 집 같았다. 광장에도 사원 지붕 위에도 비둘기들이 가득이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 중이라 사원을 제대로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복잡한 타멜 속의 사원들은 카트만두를 신비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네팔은 지역마다 음식 특색이 강하다고 한다. 카트만두는 하루만 구경하고 떠날 예정이기 때문에 저녁은 Himalayan Yak Restaurant에서 카트만두에서 주로 먹는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막상 가서는 네팔 어디에서든 먹을 수 있었던 뚝바와 모모를 시켰지만.
음식점에는 네팔 전통술이 다양하게 있었다. 어차피 한 잔에 100루피 정도 밖에 안 하기에 다른 종류의 술을 세 잔이나 시켜보았다. 가장 신기했던 건 통바였다. 큰 대나무 통에 담겨 나오는 술로 안에는 귀리가 가득 차 있고, 뜨거운 물을 부터 마시는 술이다. 약간 동동주와 비슷한 맛이 났는데 옆에 앉아 있던 현지인이 퉁바는 겨울에 마시면 그렇게 좋다고 알려주었다.
또 다시 엉망진창인 도로를 건너 숙소에 돌아와서 한숨 돌리니 방금까지 전깃줄과 먼지로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더 믿기지 않았다는 건 내가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여행을 가나 보다. 여행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만들기에.
카트만두를 구경하며 하루 종일 인도 생각이 많이 났다. 혼을 쏙 빼놓는 거리, 흩날리는 먼지, 어두운 구멍가게 속에서 여행자들을 흥미로워하는 눈동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