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일 먼저 다방에 갔다.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확인하러 간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땋았던 머리 풀고 구두 신고 화장까지 했으니 내 모습이 얼마나 어설프고 촌스러웠을까 싶다.
지금의 커피숍인 옛날 '다방'에는 학생 즉, 미성년자는 출입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안에서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 궁금했던 여고 졸업생이었다. 물론 그때도 껌 좀 씹던 언니들은 다방을 가기 위해 졸업까지 기다리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다방이란 무엇이었을까? 내 기억 속에 그것은 유리 벽 속에 있던 DJ였다.
DJ가 유리로 막힌 공간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 특히 여자 손님들을 향해 달콤한 목소리를 날리는 것이 여고를 졸업한 내가 본 신세계 다방의 풍경이었다.
가끔 코미디 프로에서 좀 촌스러운 옛날을 패러디할 때 장발의 DJ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코미디에서 보는 거보다 그들은 훨씬 멋있었다.
신청곡에 사연을 덧붙여서 유리 속으로 밀어 넣으면 그는 벽장을 꽉 메운 LP 판 중에서
귀신같이 찾아내 턴테이블에 걸친다.
판의 중심 구멍을 중지로 들어서 판에 살짝 올려놓으면 기다리던 노래가 다방 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성시경 목소리로 사연을 읽었을 테니... 유리왕자로 보였을게 당연하다.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하기 위해서보다 음악을 들으러, 아니 DJ가 틀어 주는 음악을 들으러
다방에 갔던 때다.
물론 다방에 여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연배인 사람들은 쓴 커피 앞에 두고 시국에 관해 토론하거나 인생 상담했을지도 모르겠다. 맞선을 보는 수줍은 장소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다방은 어른들의 아늑한 공간이었다.
억울하게도 젊은 시절에 껌도 못 씹고 순둥이었던 나는 다방도 디스코텍도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DJ의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다.
수십 년이 지나 지금 LP 판 틀어주는 다방에 갔다. 빛바랜 옛날 포스터가 어설프게 벽에 붙어 있다.
노노레타 (Non ho leta)를 신청했다. DJ가 음악을 틀어준다. 실내에 노노레타가 울려 퍼진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 본다.
우리 딸내미는 공부하러 커피숍에 간다.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잔소리를 많이 했지만 적당한 소음과 북적임 속의 그것이
아이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이제 커피숍도 술집도 어른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 특권 하나 뺏긴 거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