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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스케치북 Oct 17. 2018

폐쇄병동의 그들

그녀의 가족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가뭄에 단비라고 한다. 'ㅇㅇ정신병원 집단 치료실'  내가 일주일에 한두 번 일하는 곳이다. 환자복을 입은 16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굴이 하얀 여자 환자가 나를 보며 이야기한다. "저 말을 잘 못해요. 그냥 병실에 있게 해 주세요." 환자들은 크게 의욕이 없다. 게다가 미술치료 첫날이라 더 부담을 느낀 거 같다. "아무 말도 안 시킬게요. 편히 있으세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자리에 앉게 했다.

정신분열증(이 말의 어감 때문에 최근에는 조현병이라고 부른다.) 우울증, 알코올 중독증 오늘 미술치료를 함께 할 구성원들의 병명이다. 물론 미술활동을 할 수 있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환자들이다.
 '먹물로 난화 그리기'를 했다. 붓, 나무젓가락, 면봉 등에 먹물을 묻혀서 도화지에 낙서처럼 그리는 작업이다.

집단치료 시간에는 환자 대부분이 작업을 안 한다는 복지사 선생님의 귀띔이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품을 만들었다. 먹물이라는 소재는 다른 채색 도구와 달리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첫 시간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폐쇄병동을 비롯한 많은 병원들에서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웃음치료, 동물매개치료 등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나는 이 사람들과 그림을 통한 치유활동을 할 것이다. 오늘 만난 환자를 다음 주에 만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병이 악화될 수도 있고 퇴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치료의 관계는 미술작업 자체가 치유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Art as Therapy) 미술작업이 치유의 한 방법에 속할 수도 있다.(Art in Therapy). 병원의 집단 치료실에서는 후자에 속하겠지만 나는 전자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먹물 작업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환자 대부분이 ' 그냥 그렸다'라고 말했다. 학교의 미술시간처럼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그때의 느낌을 손가는대로  그린 그림들이다. 작업은 무리 없이 했는데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은 어색해하는 거 같다.


말을 잘 못한다는 그녀는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가족화를 그렸다.  약속대로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좋아하지 않는 라면을 국물까지 다 먹었다. 커피에 아이스크림 , 과자. 있는 대로 먹어치우고는 와인 몇 잔을 마셨는데 취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로서는 큰 에너지를 쓴 날이었나 보다. 하루를 마치며 나 자신에게 말했다. 섣불리 그들을 판단하지 말자. 함부로 그들에게 주려고 하지 말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분석하기보다 즐거운 미술시간으로 만들자.

 그들과의 첫 만남에 감사한 날이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다. 공부와 실습을 마치고 미술치료사로 환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다.

보통 사람들이 만나기 쉽지 않은 폐쇄병동 사람들의 이야기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그들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사연들을 하나씩 옮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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