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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Jun 09. 2019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을 때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 조앤 치티스터 지음, 판미동 펴냄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 직장을 따라 해외로 이주하면서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게 되었을 때, 가장 좋으면서도 힘든 시간은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바쁘게 준비하고 향해야 할 곳(회사)이 없는 것이 편안하고 좋으면서도 향해야 할 정해진 곳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생각 따위 필요 없이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향해 가고, 그곳에 가면 고민할 필요 없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적해 있었던 때의 아침은 무언가 생각할 여유 없이 바쁘게 알아서 시작되곤 했다. 


향해야 할 곳이 없어지고 주어진 일이 사라졌을 때 생겨난 여유에는 수많은 질문으로 나타나는 고민이 들어앉았다. "일어나서 뭘 해야 하지?" "나는 뭘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하는 걸까?" "이걸로 충분한 걸까?" "내가 해야 할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행복을 추구한다는 게 뭘까?" 


직장인은 아니지만 아직 직장인 티(?)를 못 번은 나는 당장에 갈 곳과 주어진 일이 없어지자 생기게 된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인이었을 때를 복기해보기로 했다. 이런 질문들이 쓸데없이 시간과 에너지가 많아지자 스스로 만들어낸 고민들인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 


조금만 디테일하게 기억해내자, 해외이주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퇴사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져준대도 너무 잘 한 일로 인식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면 회사를 다니면서 해야 할 많은 일들에 그 질문들을 덮어두거나 무한히 미뤄두었을 뿐, 회사를 다니던 그 하루하루에도 사실은 그 수많은 질문들이 명확하지 않은 채, 당연히 그 답변도 찾을 수 없는 채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면 "생각하지 말고 일해"라는 소리가 돌아왔을 것이고, 나도 순순히 가장 간단하고 분명한 방법이자 당장에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하며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설 자리를 지워냈을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쉽고 편리할 뿐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역할을 해 내가면서 저런 두루뭉술하고 수치화되지 않는 질문을 밀어내는 것은 합당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출근하는 길에, 퇴근하는 길에, 집에 가 멍하게 앉아서, 주말이면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한두 번씩 생각하다가 언제부턴가 내내, 틈만 나면, 항상, 언제나 이런 생각이 내 등에 찰싹 붙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다 싫어지게 됐다.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건 아니잖아."로 분명 해지는 무기력하고/싫고/헤어나지지 않는 그런 의문점들. 그런 정리되지 않는 의문이 이 책에선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31p)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너무나 많은 것들 속에 얽혀있다는 사실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회사를 떠나와, 그것도 한국을 떠나와 생긴 여유에서 그 문제들을 시시때때로 구체화해보게 됐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다양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자마자 언제나 그랬듯 급하게 그 답을 속 시원하게 빨리 얻고 싶었고 그때 바로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이 답을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역시나 인생은 그것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인지라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구체화되고 힌트를 얻을 뿐 속 시원한 답은 여전히 구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질문과 의문들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확실히 내게 용기와 자신감까지 주었다. 당연한 고민들을 당연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답에 가까이 간 느낌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


Q. 왜 나의 삶은 이렇게 정신없이 분주할까?

Q. 왜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에 괴로울까?

Q.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Q. 어떻게 하면 과거로부터 벗어날까?

Q.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까? 

Q. 어떻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까?

Q. 어디에서 나는 나의 이상주의를 잃어버렸을까?

Q. 왜 나는 틀에 박혀 있다는 기분이 들까? 

Q. 왜 나는 태어났는가?

Q. 어떻게 해야 삶에 감탄을 되살릴 수 있을까?

Q. 왜 나는 내 삶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은 결국 나는 왜 태어났고,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진부한 질문이자 중요한 질문이다. 하루하루를 보내고 살아내는 것 이상의 것이 우리 인생에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인생이라는 시간을 걸고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10대 사춘기에, 20대의 청춘기에 조금씩 분명해졌다고 느꼈던 질문들이 나이가 들면서 더 구체화될 때, 마치 내 삶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좌절감이 들곤 했는데, 인생이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런 질문들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건 온당치 않다. 


(87p) 우리는 인생이 성취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집을 사고, 학위를 마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인생은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인생이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 전혀 알지 못했던 자신이 되는 것이다. 


(89p) 지금 내가 가진 것이나 하는 일 이상의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다. 


이 책은 힌두교, 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통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216p) 나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지 무관하게, 내가 없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줄 수 있는 선물, 할 수 있는 선한 행위의 분량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불이행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때론 내 속을 흔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수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문장들이 내게 준 건 "용기"와 "자신감"인 것 같다. 위의 문장은 그런 문장들 중의 하나인데, 선한 행위의 분량을 가진 나는 그것을 이행해야 하고, 그만큼의 선한 행위의 분량을 가진 내 자체가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저자는 이렇게 분명한 문장으로 적어두고 나는 거기다 줄까지 쳐 두었으니 '내 삶이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정답에 가까운 힌트를 얻은 셈이다 


(59p)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실패가 내게 더 중요한 의미가 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분명히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할 일들에 치여서 바쁜 와중에도 무기력함을 느끼는 직장인이나, 당장에 주어진 '남의 일'이 없어지자 무기력해진 비(非) 직장인 모두에게 이 문장은 분명 힘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못 알아채고 있지만 우리가 쓰지 않고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 힘이 나를 위한 것이든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든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를 위한 것이든 아직 우리에게 충분히 있고 그것을 쓸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때 움직일 힘이 생겨난다 


(29p) 지속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깊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므로 나의 행복과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생활 속에서 이유 모를 무기력함이 생긴다면 위 문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나 하나만 편하고 즐거워서는 "이게 삶이지" 할 수 없는 어떤 불편한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각이나 활동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부러울 만큼 편해 보이는 사람이 '걱정하는 것이 취미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렇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위 책의 저 문장을 건네보면 어떨까.


그래서 뭐냐고? 도대체 무. 엇. 을. 위. 해. 아. 침. 에. 일. 어. 나. 느냐고? 

내 삶을 깊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것을 찾기 위해 일어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어떤 선한 행위로 주변 사람들의 삶도 풍요롭게 할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 일어난다. 

이것은 이 책을 읽고 난 내가 찾은 하나의 답이자 여전한 질문이다. 다른 독자들은 또 다른 답을 찾아 오늘도 일어났으리라 생각한다. 굿모닝!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

조앤 치티스터 지음 / 한정은 옮김 / 판미동 출판 / 2013.05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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