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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Aug 14. 2019

다홍색 맛, 할머니의 밥식해

우리 집밥의 별미

내게 집밥은 오랫동안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언니를 중학생 때까지 돌봐주신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에는 맛없는 것이라곤 없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편식 없이 모든 음식을 잘 먹는 건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의 반찬들이 모조리 다 맛있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외할머니가 외삼촌 네로 가면서 우리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할머니의 집밥을 매일 맛볼 순 없었지만 주말마다 외삼촌 네로 가면 할머니의 집밥을 여전히 먹을 수 있었다. 그 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는 할머니의 집밥이 영영 사라지고야 말았지만.


언니와 나는 할머니가 끓여준 꽃게탕에서 실한 꽃게를 집어 들고 입으로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면 꽃게에서 나온 국물이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타고 주욱 흘러 팔꿈치까지 가고, 팔꿈치에서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국물이 뚝뚝 떨어져 밥상 옆으로 엉망이 되어 누군가의 핀잔을 듣는 것도 잠시, 핀잔을 준 사람은 물론, 모두가 그렇게 팔꿈치로 꽃게 국물이 흐르는 걸 느끼며 꽃게탕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징어국은 갈색의 국물색이 신기하면서도 특유의 구수한 맛이 있어서 밥 한 그릇을 말아 후딱 먹기도 했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뒤집으며 양념을 발라 한 장씩 얌전하게 쌓아 올린 깻잎무침이 있으면 괜히 밥공기가 작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린 시절, 늘 앞에 두고 고민에 들게 하던 반찬이 하나 있었다. ‘다홍색 맛'이 나는 ‘밥식해’다. 밥식해는 경상북도 영덕, 흥해 등지의 토속음식인데 생선(주로 가자미나 갈치)을 삭힌 후 밥알을 넣고 마늘, 고춧가루, 엿기름 등으로 무친 다음 발효하는 음식이다. 밥식해의 색은 김장김치의 짙은 빨강, 깍두기의 청량한 빨강과 다르다. 다홍색에 가까운데 그 맛도 새콤, 달콤, 매콤하여 딱 ‘다홍색 맛’이다. 밥식해의 보석은 밥식해에 들어있는 삭은 생선이다. 문제는 그 생선을 뼈째 썰어 넣었다는 것인데 어린 내가 먹기에는 ‘삭힌 생선', ‘뼈가 있는 생선'이 주는 맛과 모양, 식감, 어딘가 별로인 그 이미지마저 다 별로였다.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는 나보다 한 살 많다고 뭘 알긴 알았던 건지 밥식해가 나오면 생선을 쏙쏙 빼먹었다. 밥식해의 보물을 언니가 나에게 양보하거나 권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뼈가 있는 삭힌 생선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다홍색 밥알만 조금씩 덜어내 흰 밥에 얹어 먹곤 했다. 퇴근한 엄마 아빠도 밥상의 밥식해를 보면 “오, 밥식해네.” “오 이번에는 갈치네.” 하며 생선을 쏙쏙 빼먹기 바빴지 굳이 내게 먹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끝내 용기를 못내 그 이후로도 할머니가 해준 밥식해에서 밥알만을 먹으며 “나는 밥식해의 생선은 별로야.”라고 했다. 한두 번 용기를 내어 집어먹어본 적은 있는데 아주 작게 떨어져 나온 생선 부분을 먹거나 뼈가 있는 부분을 씹는 둥 마는 둥 하다 뱉곤 했다. 사실은 밥식해의 생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먹어보지 않았던 거다.


대학교에 오니 다양한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취생들이 가장 좋아하던 식당은 단연 이름 없는 백반집이었는데, 먹지 못하는 집밥을 먹는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백반집에 모이면 메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상에 차려진 밑반찬을 바닥까지 긁어먹으면서 각자 집밥의 그리운 반찬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음식 솜씨가 없는 엄마의 밥상보다 솜씨 있는 백반집 아주머니의 밥상이 훨씬 맛있었기 때문에  엄마 밥상이 딱히 그립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럴 때면 꼭 할머니의 밥식해가 생각나곤 했다.


우리 할머니의 별미인 밥식해를 말했을 때 밥식해를 먹어보지 않은 친구들은 “그게 뭔데?” “식혜? 나는 식혜보단 수정과!” “생선이랑 밥을 삭혀서 먹는다고?” “전라도 홍어랑 비슷한가?” “김치나 젓갈 같은 건가" 라며 궁금해했다. 그럼 나는 밥식해를 해 준 할머니가 있었던 게 무슨 유세라도 되는 냥 신이 나곤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대학교 1학년 때 갑작스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영영 밥식해의 가자미나 갈치를 제대로 맛볼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엄마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에 여전히 할머니의 밥식해 생각이 난다. 밥식해 이야기를 하면 엄마도 “우리 엄마가 해주는 밥식해 먹고 싶다.”라고 한다. 엄마가 해 준 정체모를, 개수는 많으나 결국 다 같은 맛을 내는 반찬을 감흥 없이 먹으면서 한 번씩 “엄마는 왜 할머니 딸인데 음식 솜씨가 없어?” “엄마는 왜 엄마도 좋아하면서 할머니한테 밥식해 만드는 걸 안 배웠어?” 라며 모진 소리를 한다. 나중에 시간이 더 흘러  달라고 안 해도 알아서 차려주고, 게다가 먹어보라고 들이대기까지 하는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질 줄을 알면서도.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할머니의 밥식해를 외숙모가 똑같이 만드실 수 있다는 거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여읜 이후, 이름만으로도 따뜻한 ‘외갓집'이 내게 더 이상 없는 느낌이지만 외할머니의 밥식해를 배워 그 맛을 그대로 내는 외숙모의 밥식해가 있는 외삼촌네는 내게 여전히 외갓집이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엄마에게 묻곤 한다. “엄마, 조금 쉬었다가 외삼촌네 갈 거지?” “숙모가 이번 명절에 밥식해 했을까?” 엄마는 가는 것을 귀찮아하고, 외숙모 입장에서도 아무리 가까워도 ‘시'자 들어간 가족이 뭐가 반가울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엄마나 나나 내심 마음속으로 ‘할머니 밥식해'를 떠올리며 귀찮음과 염치를 무릎서고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경상남도 남해 출신인 외숙모는 시집오기 전까지 밥식해라는 것을 알지도, 먹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해준 밥식해가 너무 맛있고 가족들도 다 너무 잘 먹어 할머니에게 배웠다고 하시는데 솜씨 좋은 외숙모는 할머니의 맛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 나는 이제 용감해져 밥식해의 보물인 가자미나 갈치 큼지막한 조각을 집어 입에 문다. 잘 삭은 생선의 뼈는 부드럽게 씹히며 식감이 좋다. 과연 밥식해의 밥알만 먹어서는 밥식해의 다홍 맛을 다 알 수 없다. 먹으면서 내가 “오, 할머니 맛이다!”하면 엄마는 “오, 우리 엄마 맛이네!” 한다. 그러면 숙모는 벌써 우리가 가져갈 밥식해를 챙기고 있다.


오늘 아침엔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었는데, 흰 밥에 밥식해 올려 입에 넣는 그 다홍 맛이 너무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침샘이 자극되어 침이 흐르는 그 다홍 맛은 우리 할머니의 밥식해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우리 집밥의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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