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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Jan 31. 2020

새해에도 여전히 '목표도 없는 놈'

2020년에 나는

목표도 없는 놈


목표가 없으면 ‘님’도 아니요, ‘남’도 아니요, ‘놈'이다. 목표를 세우고 전력 질주하여 목표를 이루면 ‘성공’, 전력 질주하였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면 ‘실패'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껏 따라오던 성공과 실패의 공식. 이런 공식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 문화 내에서 나고 자라면서 당연하게도 목표라는 게 우리 삶을 이끄는 큰 동력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목표라는 것은 늘 이루지 못해 나를 반성하게 했고, 실패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삶의 동력이 아니라 실은 나를 실패자로 만들게 한 장본인이자, 패배자에 머물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나를 무섭게 밀어붙인 채찍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목표라는 것은 애초에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목표를 이루지 못한 내게 잘못이 있다기보다 우리를 매번 실패로 이끌고 주눅 들게 하는 목표라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2020년을 맞이하고 자칫 하다 ‘새해 목표를 세워야지’라고 마음먹을 뻔했다. 여태껏 실패해보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걸까. 그래서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목표도 없는 놈’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지금껏 자의든 타의든 목표가 이끄는 삶을 실패적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것을 치우기 위해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쯤 하면 ‘목표를 안 가지는 것이 목표’인 거 아니냐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법한데, 늘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게 나를 데려다 놓았던 ‘목표'라는 단어 자체와 멀어지기 위함이니 그 단어 사용을 자제해 주길 간곡히 바란다. 


무언가가 빠진 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는 일상이,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과정이, 과정에서 만나는 만족이, 만족이 부르는 여유와 성공이 채워질 것이라 기대한다. 어깨에 힘 잔뜩 넣고 거창하게 목표 세우려 해 봤자 어깨 결릴 뿐이다. 차라리 긴장에 뭉친 어깨를 풀기 위해 매일 30분씩 조용히 스트레칭하는 일상을 스스로 챙기고 발가락을 향해 뻗은 두 팔이 종아리에서 발목, 발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그 과정을 흡족해하는 사이 날마다 조금씩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한의사 선생님 말처럼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한 방에 갈 수 있는 일자 허리를 가진 나는 한 방에 가지 않기 위해 스트레칭을 한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나의 스트레칭을 보고, “지금 다 숙인 거야?”라고 말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 눈엔 안 보여도 내가 날마다 하는 과정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걸 알고, 그것으로 나는 이미 반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니까. 


일상에서 내가 해오던 것을 꾸준히 지속하거나 그동안 하지 않았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몸치임에도 라틴댄스를 배우면서 몸 쓰기를 지속하는 것, 환경을 위해 빨대와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가는 것, 나의 일상이나 여행기가 담긴 글을 쓰는 것 등. 


문제는 이런 것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무엇을 하든 그래도 목표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의도적으로 목표를 밀어내고 살면서도 심심치 않게 툭 툭 나를 건드리고 시험에 들게 하는 ‘목표'라는 놈을 지워 내기 위해 ‘목표도 없는 놈'이 해야 할 것은 일상의 루틴과 과정을 기억하고 빠짐없이 느끼는 것이리라. 기억을 도와주는 데엔 기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과정을 기록하고 기억하면 결과인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도 조금씩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칭을 하면서 한 달 전에는 종아리를 겨우 잡았는데, 지금은 발목 근처까지 두 손이 닿게 된 것이라거나,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춤이 늘진 않았지만 오늘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든지... 목표를 세웠다면 “왜 아직도 발가락을 잡지 못해! 스트레칭 제대로 하긴 한 거야?”, “지금 그게 라틴댄스야, 군대 행군이야? 스텝 연습 백 회 실시!” 이런 식으로 나를 비난하고 힘들게 밀어붙이게 될 여지가 크다. 어우,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13년의 학창 생활, 취업 준비기와 백수기,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목표에 당해 놓고도 아직도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매년 초 새롭게 부팅하는 나 자신이. 


2020년이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간다. 남의 기준,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내 하루를 채우면서 실패보다는 성공을 거두는 날로 가득 채울 2020년을 계획한다. 결과만이 성공이 아니라 ‘꾸준히 한 과정', ‘자책하지 않고 충분하게 처리한 실수', ‘고통보다는 즐겼던 순간'들을 성공이라 부르면서 그런 성공을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목표라는 놈이 끈질기게 덤벼들 것을 안다. 목표라는 놈을 극복하여 매일매일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자신감을 얻고 즐거움을 알게 되는 ‘목표도 없는 놈'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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