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 거주하시는 시부모님에게 미국 서부 여행을 제안했을 때, 로스앤젤레스(LA)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그 제안의 중심에 있었지만 내 계획 속에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는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미국 서부 여행이나 LA 근교 여행 등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곳 중의 하나가 '디즈니랜드'인 걸 알았다. 하지만 아이도 없는 30대 후반의 우리 부부와 60대의 시부모님이 디즈니랜드를 가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생략했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는 1955년에 개장한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이자 최초의 디즈니랜드다. 이곳은 디즈니랜드 파크와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서부 여행의 계획을 어느 정도 세우고 시부모님이랑 페이스톡으로 공유했다. 그러던 중에 시부모님이 아주 설레는 표정으로 우리를 깜짝 놀래켜 주시듯이 말했다. "우리가 디즈니랜드 티켓 할인가에 사 뒀단다!"라고. 디즈니랜드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던 거다. 여행 계획의 99프로를 우리가 세웠는데 디즈니랜드만큼은 60대의 시부모님에 의해 확정되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거기에 다른 의견을 보태지 않고 "좋아요. 고맙습니다." 했다. 그렇게 해서 당연히 디즈니랜드를 가게 되었다.
디즈니랜드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그때부터 이미 디즈니랜드를 사랑하게 되었다.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걷기조차 불편해 보이는 노인들이 주차장에서부터 디즈니랜드의 각종 소품을 꺼내 들뜬 표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바글바글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인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늙은 우리가 가서 뭐 하니. 애 데리고 잘 갔다 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가 아닌 것. 아이부터 노인, 지팡이 짚은 사람, 휠체어 탄 사람까지도 각자가 좋아하는 캐릭터 소품을 몸에 두르며 진심으로 행복한 모습이었다.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도 그들의 속도로 신나게 출입구를 향해 가고 있었고, 휠체어 한쪽에 미키마우스 풍선을 꽂고 직접 이동하거나 동행자가 밀어주기도 하면서 그들은 마치 '나이 든 게 대수랴', '아픈 게 대수랴' 하는 듯이 나아갔다. 이 광경은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파크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파크
우리가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건강이 최고다. 아프면 끝이다."라는 말.
물론 건강이 중요하니 그만큼 관리를 잘하라는 표현의 과장법이겠지만, 이 말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인사말로 주고받을 때 "나중에 절대 아프면 안 돼. 아프지 말아야지"하는 다짐과 함께 '아프면 끝이라는데 어쩌지. 절대 아프면 안 돼...' 하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프면 끝이니 아프기 전까지 잘 살아야지...... 이게 맞는 말일까?
우리가 나이 들어 죽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사고 혹은 질병. 내가 걸리고 싶어서 질병이 걸리거나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내 생의 잘못으로 인해 내 질병이 결과로 나타나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운명'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이 들면 절로 아픈 것이 진리 아닌가. 이것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나. 의지로 선택하지 못하는데 운이 좀 없어서 병이 걸렸기로서니 인생이 끝이라고 선고받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혹시 내가 아프게 되면'이라고 미래형으로 상상하는 우리에겐 그나마 덜 잔인한 말이라고. 당장 지금 아픈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나는 저 말('아프면 끝'이라는 말)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에서, 그리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다치거나 병들어도, 나이가 들어서 남만큼 잘 걷지 못하거나 아예 휠체어에 의지해서 이동해야 하더라도 원한다면 그들의 속도로 방문하고 즐기고 가는 사람들을 봤다. 그 모습은 '아파도 끝이 아니'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나이 듦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이 아플지언정, 내가 병에 걸릴지언정 내 삶은 계속되고 끝이 아니라는 것. 아픈 몸, 내게 생긴 병을 잘 돌보며 내 안에 살아있는 건강했던 나와 다름없는 나를, 불편한 몸과 한 팀이 되어 잘 다독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
장일호 작가의 <슬픔의 방문>이란 책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장일호 작가는 실제로 암투병을 했다. 나이가 나랑 동갑이다(1983년생, 40세). 나이 든 사람의 아픔과 비교적 젊은 사람의 아픔은 그 무게가 다르다고 할 것인가. 누구나 40세가 되듯 누구나 70이 되고 80이 되어서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게 되는 게,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올 미래인데 말이다.
... "병은 삶을 바꾸는 질문"이 되어야 하는가, 혹은 될 수 있는가, 나는 절반만 동의한다. 병은 내 삶을 흔들어 대고 일정 부분 바꿨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병의 원인을 내가 살아온 삶을 반성하는 일로 갈음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슬픔의 방문 - 장일호> 240p 중
나이 마흔이 되니 확실히 체력이 떨어지고 새치도 많아졌다. 자신만만했던 '깡'도 체력이 떨어지니 사라졌다. 팔자주름도 깊어져서 마스크 끼던 시절이 편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늙어가는 내 몸뚱이와 달리 내 마음속에 있는 나는 스무 살 대학에 신나게 다니며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만끽하던 그때와 그대로인 내가 있다. 우린 그대로인데 나이만 먹고 몸만 쭈글해졌다고 동기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60이 되고 70이 되면 달라질까. 마흔쯤 되니 알 것 같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결국 같은 '나'라는 것을.
아프면 끝이니 건강관리 잘하라는, 혹은 잘하자는 말이 가끔 무섭다. 나이 들어서 아프게 되면 난 끝난 거라고 선고를 받게 될 것만 같아서. <슬픔의 방문> 저자가 한 말처럼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세상의 말을 하는 우리가 말 조심해야 한다.
누구도 아픔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아프지 않고 한 생을 산다면 그건 억수로 운이 좋은 일인 거 아닐까. 아프지 말라고 하지 말고 혹여 아프게 되더라도 아픈 몸도 잘 돌보며 함께 재미있게 살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다정한 세계'에서 나는, 아파도 아프고 싶다.
나는 디즈니랜드를 시부모님의 티켓팅으로 별 기대 없이 가게 되었는데, 다녀와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되면, 아니 꼭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에 가 보라고 권한다. 아이 있는 집뿐만 아니라 올해 일흔 되는 엄마 아빠에게도 가자고 한다. 아이들만 신나는 나라(land)가 아니고, 그곳은 아이부터 백발노인까지, 건강한 사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까지 다 행복한 나라였으니까. 월트 디즈니의 상상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멋진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지 자라는 아이들에게 꼭 보여줬으면, 그리고 다양한 사람이 어떻게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며, 아파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그 즐거움 속에서 절로 발견하게 될 테니까. 다정한 세계를 위해, 디즈니 나라(land)의 비싼 입장료는 값어치가 있다.
첫 방문자에게 주는 디즈니랜드 배지 사진: Unsplash의 Janosch L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