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이번 학기 성적은 ‘blanket B’로 하겠다."
웅성거리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 자기는 자기가 한 만큼 받기를 원한다, 잘했으면 A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결의에 찬 어조로 받아쳤다.
그 여학생 생각이 옳다면 필그림 교수 생각은 옳지 않아야 했다.
"예외는 둘 생각이다. ‘쿵자 춘’처럼 특별히 뛰어난 학생에게는 A를 준다."
Kyung ja Chun을 필그림 교수는 ‘쿵자 춘’이라 발화했다.
1970년 대 초, 아시아에서 미국유학 온 여학생들 중에 ‘특별히 뛰어난 학생’은 모조리 아이비 리그로 가버렸나?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교로 유학온 인문계 여학생들 대부분은 뇌가 한가한 친구들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날 수업은 휴강이라는 말도 못 알아듣는 유학생들을 십 수년 상대해 오던 필그림 교수 눈에 ‘쿵자 춘’은 보물이었다. 다만, 그러한 평가가 (적어도 인문계에서는) ‘영어 실력’ 하나로, 껍데기 하나 만으로 결정되곤 했다는 사실은 밝히고 넘어가야 공평하지 않나 싶다.
지니바 필그림(Geneva Pilgrim)교수는 환갑이 지난 백발 노인. 이목구비는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저 그랬고 웃음기 없는 얼굴에 눈빛은 늘 서늘했다.
반론을 제기했던 씩씩한 그 여학생은 ‘쿵자 춘’ 기준 특별대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나에게 다가와 "손 한 번 만져 봐도 돼? 영광이다"라고 말하면서 내 손을 잡고 방긋 웃었다. 좋은 선생이 될 학생이 분명했다.
종강파티 차원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집에 초대하는 일이 왕왕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필그림 교수는 학교와 집 사이에 굵직한 중앙선을 그어 놓았다. 하기는 노부부가 단출하게 사는 집에 몰려가서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고 싶다는 학생들도 없었을 테지만.
그 필그림 교수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은데 오겠느냐고 물었다. 노부부하고 오붓하게 셋이서? 당기지 않았는데 튀어나온 소리는 “Yes”였다.
아내 키 만한 키에 아내처럼 백발인 미스터 필그림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아내가 자기 학생을 집에 초대한 유일한 학생이라면서 반가워했다. 유창한 영어와 우수한 두뇌를 등가로 착각했던 필그림 교수가 남편한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뻥 튀겼구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싫지는 않았다.
당신 집에서의 필그림 교수는 달라도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게 밝고 쾌활했다. 눈까지 각이 서 보이던 엄정한 표정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얼굴도 예뻐 보였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븐에서 저녁이 나왔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필그림 교수는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 음식이름부터 시작해서 조리과정을 찬찬히 읊었다.
스피니치 캐서롤(spinach casserole) : 1) 토티아 깔고 2) 그 위에 마일드 체다치즈 깔고 3) 그 위에 토티아 깔고 4) 그 위에 삶은 시금치 채 썰어 깔고 5) 그 위에 토티아 깔고 6) 그 위에 간 소고기 깔고 7)그 위에 토티아 깔고 8) 그 위에 체다치즈 듬뿍 뿌려 놓은 다음 9) 오븐에서 화씨 375도로 45분.
저녁 메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먹을거리 전반에 걸친 필그림 교수의 강론 덕에 나는 말이라는 것을 할 필요 없이 스피니치 캐서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응접실로 옮기자 ‘대화의 장’이 열렸다. 미스터 필그림은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 너무 많았다. 내가 대충으로나마 대답할 수 있는 전통, 문화, 관습 등이 아니라 나로서는 무지해서 답할 수 없는 한국경제와 아무리 나지만 모를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한국정치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셨다.
대학교 정문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 IMPEACH NIXON!
대통령이 치사한 짓 좀 했다기로서니 대학생들 주제에 감히 대통령한테 당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대문자로 명령할 수 있는 나라.
대통령님의 위대한 정책에 관해 감히 개소리를 수군거리는 놈들을 색출하려고 가짜 대학생들을 교정에 심어 놓는 나라.
자아, 우리나라 대통령님께서는 국민을 불쌍히 여기시어 미국에서나 하는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국식 민주주의’를 창안하사 오로지 부국강병을 위하여 대외적으로는 튼실한 우리 청년들을 미국에서 던져주는 똥값 받고 베트남 전쟁에 무더기로 보내시는 원대한 기획을 완수하시는가 하면 대내적으로는 도덕 및 윤리적 기강을 확립시키는 차원에서 젊은남자 머리길이와 젊은여자 치마길이같은 허접쓰레기 사안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손봐주신다,고 사실 대로 말씀 올릴까?
싫었다. 그 사실이 당장은 사실이라는, 그리고 그걸 까발려도 잡혀갈 위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70년대 대한나라 정치를 ‘재미난 후식’으로 탁자에 올려놓고 싶지는 않았다. 대한사람으로서 자격지심이 발동했나?
순간, 울컥, 미국이 괘씸했다. 이렇게 큰 나라가 이렇게 힘있는 나라가 그렇게 작은 나라를 그렇게 힘없는 나라를 우려먹는다니….
당신 남편 질문들을 마뜩찮아 하는 내 얼굴을 읽으셨나?
필그림 교수가 끼어들었다.
“Would you like some dessert?”
“What do you have?”
“We have Rice Pudding."
“No, thank you. Where I come from, we take rice seriou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