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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년 Jan 20. 2023

영어

헬로! 헬로! 헬로!  김미! 김미! 헬로! 김미! 헬로! 김미! 헬로! 헬로! 김미! 김미! 헤이! 헤이! 헤이 ! 멍키! 멍키! 멍키! 멍키! 멍키!


그러다가


헬로! 김미 껌! 김미 껌! 껌 예스? 껌 노? 껌? 헬로!!!


그러니까


'헬로'와 '김미'와 '헤이'와 '멍키'와 '예스'와 '노'와 '껌'


이 일곱 단어를 완전히 마스터하여 상황에 걸맞게 동무들과 더불어 목청 돋구어 외쳐대던 때가 내 나이 . . . 아니, 당시 내 나이가, 또는 다른 어느 누구의 나이가  몇이었던 지와는 무관하게,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 당시에는 “육이오 동란”이라 불렸다가 후에는 줄여서 (당연히 '동란'이니까 당연한 건 당연히 빼고) “6.25”라고 불렀던 그 시절, 배가 고프니까 머리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고, 아침에 눈 뜨면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온종일 고프기만 했던, 그래서 혼신이, 전신이 먹을 것에만 꽂혀 있었던 그 시절, 아 ~ 그 시절, 영어도 언어라는 사실에 나하고 내 동무들은 아무 가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나와 내 동무들의 의사를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사실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워버리고 말았다. 


"헬로! 김미 껌!"


그 소리에, 그 외침에 빙긋 웃으면서 껌 한 통 건네주는 GI도 있었고 전혀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를  와락 지르면서 닭이나 개  쫓 듯, 훠이 ~  훠이 팔을 뻗어 손을 내젓는 GI도 있었지만, 그리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흔했지만 우리는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득한 "헬로! 김미 껌!"을 반복했고 우리를 비렁뱅이 취급하는 GI는 졸지에 "멍키! 멍키! 멍키!"가 되었다.


아홉 살에 학교에 갔다. 여덟 살까지 바쁜 일이 있어서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라는 곳에 갔을 리는 없으니, "어린애, 서둘러 핵교 보내 뭐하냐?"거나, "까짓 핵교 아무때 가면 대수냐", 라는 아버님의 한가한 결의의 결과일 게다. 어쨌든 일곱 살이나 여덟 살 백이들과 제대로 섞여지지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많은 그 시간을 나는 <소년소녀세계 명작집>에 들어가서 재미나게 놀았다.  '하이디, 샬로트, 베스, 피터, 폴, 톰, . . .'  남자아이, 여자아이 이름들이 그랬다. 생소하면서도 소리내서 불러보면 근사하게 들렸다.


 '내 이름은 영어로 뭘까?'가 너무, 너무 궁금했던 날,  중학생 오라버니한테 물었다.

 

"전경자가 영어로 뭐야?"

"뭐긴 뭐냐, 전경자가 전경자지."


오빠가 무안해 할까 봐 다그치지는 않았다.  

순간, 결심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 힘으로  기필코 알아 내리라,고.  


그리고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나에게는 대문자, 소문자, 인쇄체, 필기체를 점선 따라 그려내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는 식구들도 모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은 물론 반 아이들도 모르게 비밀스레 하는 공부라서 으쓱 으쓱 매일 매일 엄청 좋았던 그 기분, 지금도 눈 감지 않아도 느껴진다. 나의 영어공부는 그렇게 독학으로 시작했다. 


그 후 학교도 또박또박 다녔고 대학 기숙사시절에는 룸메이트들한테서, "잠꼬대를 치사하게 영어로 하더라" 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말로, 영어에 미쳐 있었다.


또 그 후 그럭저럭 유학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퍽 오랜동안 우리문학작품 영역에 빠져 있었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는 한국문학작품 영역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채만식선생의 [태평천하] 영역으로. 


그리고 


제법 하는 영어 덕에 영문과 교수도 30년이나 했고 또 그 덕에 지금은 연금으로 살고 있다.  그러하니, 이러하니 내 일생이라는 것이 실은 영어로 시작해서 영어로 끝나가고 있는, 참으로 영어로 빌어먹다 영어로 벌어먹는 한 생이 아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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