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방년 Feb 12. 2023

미스터 할로웨이 (1) - 만나기

    미스터 할로웨이의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3센티 정도 짧다.  

    경우에 따라서 3센티는 별 길이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다리 길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오른쪽에 3센티 깔창을 깔아 특수 제작된 구두를 신고 차렷 자세로 서면 180이 훌쩍 넘는 미스터 할로웨이는 훤칠한 신사로 보이지만, 일단 걷기를 시작하면 전신이 좌우로 심하게 뒤뚱거린다. 

    팔도 다리와 같다. 오른쪽 팔은 왼쪽보다 5, 6 센티 정도 짧다. 가느다란 팔 끝에 달린 손은 서너 살 아이 손 크기이고 다섯 손가락 모두 오그라들어 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불알도 짝짝이 인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 눈은 왼쪽 눈보다 작지 않다. 콧구멍 크기도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똑같아 보인다. 하기야, 보기에 똑같으면 똑같은 거지, 콧구멍 크기를 자기 콧구멍이든 남의 콧구멍이든 자로 재 보는 사람은 없지 않나. 채플린 영화 주인공이라면 모를까. 

    입술과 턱은 정상이다. 얼굴만 보면 지적으로 각이 진 T.S. 엘리엇 얼굴이다. 엘리엇은 '서혜부 헤르니아' 때문에, 미스터 할로웨이는 '소아마비'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시절을 책에 묻혀 보낸 것도 비슷하다. 다만 엘리엇은 (사적으로) 68세에 30세 연하의 여인과 두 번째 결혼을 했고 (공적으로) 영문학사에 길이 보전되는 인물로 영구화 되었으나, 미스터 할로웨이는 (사적으로) 한 평생 한 여자를 짝사랑하다가 (공적으로) 이 세상에 왔다갔다는 흔적도 없이 영구히 사라진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1934년 5월 시카고 외곽 어느 마을, 야외에서 고등학교 졸업축하파티가 있던 날.  

    미스터 할로웨이는 어린시절부터 짝사랑해온 사촌 아이린을 보기 위해서 난생 처음 파티장이라는 곳에 간다. 파티가 끝난 후, 미스터 할로웨이, 아이린, 아이린 여자친구는 축구선수 알프레드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게 된다. 아이린과 아이린 여자친구는 서로 알프레드 옆자리에 앉으려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친구한테 밀려 아이린은 뒷자리에 앉게 된다.  '병신 사촌' 옆에 앉게 된 것이 기분 나쁘고 알프레드 옆에 앉지 못한 것이 분해서 아이린은 집에 가는 내내 눈물을 뚝뚝 흘린다.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한 미스터 할로웨이의 꿈은 수학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할로웨이의 심각한 신체적 장애가 교수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를 보인다. 군 감사관처럼 노후가 보장되는 직장이면 모를까.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그 수준이었나?) 결국 할로웨이는 꿈을 접고 지도교수가 추천한 길을 받아들인다. 그후 30여년 동안 극동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 기지들이 그의 관할구역이 된다.



 

    1963년, 종각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직진하다 보면 오른쪽에 <르네상스> 고전음악 감상실이 나온다.  시계 불알이 되어 등하교를 반복하던 나에게 <르네상스>는 '태종태세문단세'가 아닌 '베토벤드보르자크보케르니' 세상으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면서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넓죽한 직사각형 커피 테이블 맞은편에 점잖게 생긴 서양 중년 남자가 있다. 서양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두툼한 책을 왼손으로 펴 들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 영어책이다. 

    고2 영어교과서는 시시해서 제쳐놓고,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원서로 독파했노라고 으스대고, 냇 킹 콜의 <Mona Lisa>는 애절하게, 레이 찰스의 <Take These Chains from My Heart and Set Me Free>는 절절하게 (집에서, 혼자) 불러 댔던 그때 그 시절. 그런데 실전에 써먹어본 적은 없다.

    말을 좀 걸어보고 싶어 좀이 쑤신다. 

    책을 읽고 있는데… 방해가, 실례가 되나? 

    그래도…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에라 모르겠다. 가보자. 

    "What are you reading?"

    했다. 해냈다. 

    고개를 들고 나를 건너다보는 눈이 맑다. 

    "A history book."

    오. 히스토리. 역사. 

    "What kind of history book?"

    "A medieval history."

    메디벌? 아아, 뭐였지?? 막혔다.

    우리 두 사람의 첫 대화는 거기에서 끝나고 남자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날을 시작으로 <르네상스>에 들어서면 나의 눈은 으레 그를 찾았다. 마치 자기 지정 좌석이라도 되는 듯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으니까, 어디 앉아 있는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출석 여부 확인 차원에서.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서울 근무 기간 동안에는 저녁식사 후 <르네상스> 출근이 그의 일과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음악 감상실은 손님이 듣고 싶어하는 음악,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그 제도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미스터 할로웨이는 달랐다. 그는 커피나 홍차를 가져다 주는 <르네상스> 직원에게 자기가 듣고 싶은 곡을 종이 쪽지에 적어 건넸다. 올 때 마다 그랬다.  <르네상스> 측에서는 자기네 음악실을 근면성실하게 찾는 유일한 서양사람의 신청곡은, 남들의 신청곡 신청 쪽지가 아무리 쌓여 있어도, 어김없이 틀어주었다. 그래서 3년이 넘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미스터 할로웨이의 신청곡을 들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곡들이 나의 취향을 바꿔놓았다.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남몰래 흘리는 눈물”, 푸치니 <토스카> “별은 빛나건만”, 푸치니 <라보엠> “그대의 찬 손”,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등.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던 아리아는 헨델 <리날도>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내버려두오)”이었다. 



    <르네상스>는 한가하게 담소를 즐기라는 장소가 아니다. 일단 문을 밀고 들어서면 성큼 걸음을 내딛기 불편할 정도로 조명이 흐릿하다. 눈이 적응한 다음에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실내를 가득 채운 음악소리에 한 번 압도되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육중한 침묵에 또 한 번 압도된다. 

    어쩌다 주변에 들릴 정도의 대화가 있을 경우, 그 당사자들은 멸시 섞인 눈총을 받는다. 입은 닫고 귀만 열라,는 것이 <르네상스>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미스터 할로웨이의 저음과 한껏 내리 깔은 내 목소리는 음악소리에 심취된 타인의 청각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나 보다. 일주일에 서너 번, 거의 반 년 동안 이런 '실전'이 이어졌는데 내 기억으로는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You have a Swiftian tongue."

    뭐라고? 무슨 혀? 

    "…what tongue?"

    "A Swiftian tongue. Jonathan Swift."

    오! 갸는 안다, 내가. 

    "Ah, <Gulliver’s Travels>?"

    "Right. Have you read it?"

    "Sure. Why, haven’t you?"

    "Ha, ha, ha. Yes, I have. What about 'A Modest Proposal'?"

    "What about it?"

    "Have you read it?"

    읽기는 무슨. 처음 들어보는데. 

    "Well, not yet. You think I should?"

    "It’ll show you what a Swiftan tongue is." 


    매번 내가 먼저 일어나다가 처음으로 둘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선 날. 

    본인이야 평생을 그리 했을테니 특별히 불편할 것도 없었겠지만 몸을 오른쪽으로 기우뚱 구부리면서 왼쪽 다리를 의자에서 빼어낸 후 (내 눈에는 어렵사리) 통로로 발걸음을 내딛던 모습에 나는 입이 벌어졌다. 불구라니!  

    그날 밤, 우리는 걸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이것 저것, 아무거나,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이전 11화 영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