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간의 사회적거리두기가 내 삶에 미친 영향 중 하나는 인간관계 가 보다 분명해진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도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면서 안부를 묻고 대화 하는 친구들 속에 우선순위가 생겼고, 최근 들어서는 그 순서대로 여가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당연히
•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 만나면 재밌고 편한 사람
• 흥미롭거나 배울 게 많은 사람
써놓고 보니 이런 사람만 만나는 게 당연해보이는데 돌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나쁜 점 49라도 좋은 점 51이니까 만난다’ 같은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참아주었기 때문에 참는다’ 라는 보살같은 생각을 하기에도 너무 시간아깝다. 그래서 아래 종류의 사람들과는 만나는 건 물론이고 거의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다.
• 만나는 일에 (거의) 늘 수동적 인 사람
• 말 속에 (열등감 기반한) 가시가 돋아있는 사람
• 매사에 부정적이거나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
• 나랑 싫어하는 코드가 다른 사람
말도 별로 섞지 않는다. 대화가 유쾌했던 적 거의 없으니까. 어이없는 공격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내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내 말에 반응해서 갱생할 기회를 주고싶지 않으니까. ‘그대로망해라’ 심보다.
모임의 규모는 확실히 작아졌고 만나는 장소나 활동이 자유롭진 않지만 일과 후 사람 만나는 빈도는 현재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었다. 하지만 한 번 정리된 이 관계는 예전같이 회복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자연스레 회복이 된다 하더라도 의지적으로 막고싶다.
김애란 작가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라 했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나를 성가시고 기분나쁘게 하는 사람들과 되지도 않는 화해를 하려 애쓰다 죽기보다는 마지막까지 펀쿨섹 하게 반어른 으로 지내고 싶다. 다정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만 보내도 24시간이모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