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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단어

호의

by 담쟁이

내가 정말 신뢰하는 친구이자 멘토이자 동생인 B는 남자지만 나의 연애상담 의뢰 1순위다. 놀라운 통찰력과 특유의 다정함과 섬세함이 언제나 나를 꿰뚫으면서도 내 자존감을 세우고 분별력을 갖도록 하는 현명한 말을 건네준다. 한 번이었다면 얻어걸렸다고 생각할 텐데 이미 여러 번의 의뢰 끝에 검증된 그의 상담력은 이제 연애뿐 아니라 관계의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참고가 된다.


그런 그가 오늘은 이런 말을 했다.


‘남자가 이성에게 보내는 호의에는 분명히 1%라도 호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신뢰하는 출처이기 때문에 단번에 인정해보고도 싶었지만, 나는 호의에 다른 의도나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상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이란 잘 변하고 악한 본성도 그 안에 있음을 기본 가정으로 하는 편이지만 인간에 대한 의심이 많은 것과 관계없이 내가 겪은 실제 사례들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가설을 내놓는 B의 말은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웃기기까지 했다.


“야, 그 오빠가? 나를?? 말이 되는 말을 해라!!!”


그럴 리가 있냐고 부정하는 나에게 B는 그걸 전혀 못 느끼는 게 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그들에겐 매력일 테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은 모든 남자들을 의심한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B가 예시로 들었던 몇몇 사례들 이외에 B는 전혀 모르지만 ‘지나고 나니 단순한 호의는 아니었던’ 또 다른 사례들을 떠올렸다. 소름 돋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개연성. 역시 결혼까지 한 남자가 하는 말이니 믿어볼 만한 말인가.


그와 동시에 그걸 알아채면 또 어쩔 건가 싶었다. 앞선 ‘불순한 호의’들의 숨은 의도를 내가 일찍 알아차렸다 해도, 그 숨은 의도가 기쁘면 기쁜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아는 척하고 반응하기가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100 중에 1 만큼이 딴마음이었다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비율 아닌가. 그럼 10은? 45라고 하면? 그럼 호의의 순수성을 내가 알아서 판단해야 해? 일정 수준 넘어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때 그렇게 천진하게 잘 만나고 밥 먹고 했던 사람에게는 그럼 내가 잘못한 거야? 갑자기 온갖 지난 일들이 생각나면서, 친한 남자 사람 친구 범주 안에 넣었던 모든 사람들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와... B 너 진짜 나쁘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건데?”


결국 혼자서 복잡해지던 마음은 현재 진행형의 호의가 없다는 걸 깨닫고 생각을 멈췄다.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이러나저러나 모르는 게 상책이고, 알게 되었을 경우에도 모르는 척하는데 현명한 일 아닐까. 드러내지 않는 마음을 읽어내는 것보다는 좀 더 귀하고 필요한 일에 내 지식과 마음을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많은 남자 사람들에게 모른 체 하며 또는 모르는 채로 그 호의를 순수하고 기쁘게 받는다. 깊이 모르면 모든 게 아름다운데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인 그 아름다움을 마다할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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