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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단어

조문

손을 잡지 않고 위로하는 법을 도무지 모르겠어서 손만 꽉 잡았다

by 담쟁이

자랑은 아니지만 서울시내 웬만한 종합병원은 장례식장 가는 길 헤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이 다했고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이 태어났던 걸까.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상주의 얼굴은 천국 소망 가진 사람답게 밝고 씩씩하지만 나는 조문객을 웃으며 맞는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생각이 나서. 조문 행렬이 잦아든 늦은 밤에 찾아와서는 정확하게 지금과 똑같은 표정과 텐션으로 밥을 먹는 그 앞에서 나는 마치 웃는 상으로 안면근육이 굳어버린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어떤 감정표현을 선택할 만한 감정적인 여유가 그때의 내겐 없었다.


코로나 시대의 조문은 신체접촉을 허용하지 않지만 손을 잡지 않고 위로하는 법을 도무지 모르겠어서 손만 꽉 잡았다. 다른 걸로는 위로하는 법을 몰라서 어제 만난 사람처럼 평범하고 실없는 얘기를 나눴다. 작년에 만나서 삼계탕 먹은 이야기 같은 거... 조금만 더 있었으면 반지의 제왕 이야기할 뻔했다. 예전에 추천해 줘서 읽었던 책이 오늘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았노라고. 당신이 정말 내 인생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고.


시간 많으니까 잠깐 앉았다 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와서 내게 익숙한 곳 한 바퀴 둘러 찬찬히 걸어서 나온다. 마치 오늘 이러려고 여기 왔다는 듯이. 나중에 다시 와도 오늘의 기억이 떠올라도 슬픔의 기억은 일부로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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