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창문에 코를 박고 있다가 내렸다
열몇 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내에서의 시간은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다. 비즈니스석으로 탑승한다 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천상 밖순이인 나에겐 좋은 서비스나 여행지로 향하는 설렘도 그 갑갑함을 상쇄하지 못한다. 비행이라는 이 시간과 공간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국내 상공을 한 바퀴 돌고 착륙하는 항공 상품이 생겼고 그게 2020년 한 해 잘 팔렸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시대의 웃픈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내식도 못 먹는 코로나 시대에 여기에 그렇게 수십만 원 들일 일이야?
하지만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 해에만 아홉 번 출국했다가 그 이듬해 내내 국내에 발 묶여 있고 보니,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비행기 창문에 눈을 딱 붙이고 ‘우와우와’ 창밖 구경만 하다가 내리던 어린 나로 돌아간 것처럼 제주로 오가는 하늘길이 전과 다르게 보인다. 아니 사실 제주에 갈 때 창밖을 자세히 본 적이 거의 없다.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과 한반도 끝자락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도랑 맞춰보기 위해 이륙 전 지도를 캡처 해 두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창문에 코를 박고 있다가 내렸다. 한 때 귀하고 소중했던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 무뎌진 감정과 감각을 되살려주는 것, 코로나가 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