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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이동

2 사분면으로 나랑 같이 갈 거 아니면 그냥 비켜줄래?

by 담쟁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던 관계에 어느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붙어서 무거워지기 시작할 때가 있다.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면 장난치듯 주고받는 게 즐거웠는데 오늘은 문득 오고 가는 대화의 뉘앙스와 리액션에 신경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본 적 있다. 이런 나를.


싫은 마음은 분명한 계기가 있는데 좋은 마음은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옆구리 간질간질하면 그만하라고 자지러지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듯이,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 감정이란 걸 아니까 기분이 꽤 괜찮으면서도, 어떻게 전개될지 보이니까 구태여 마음을 또 헤집을 일이 까마득하다. 이상해. 나다운 건 마냥 기뻐서 방방 뛰는 건데 이번엔 대체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어. 번개 맞은 것처럼 번쩍하거나 찌릿찌릿한 건 아닌데 자꾸 물어보고 싶은 것만 많이 생겨. 본래 다정한 기질의 사람이 내게 주는 다정함은 마약이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발견하는 공통점은 환각인데 지금 내 상태는 거의 약쟁이야.


내 마음의 사분면. 4사분면에서 1 사분면으로 가기도 전에 자꾸 3 사분면으로 좌표 이동한다.


저녁에 필라테스를 하는데 정지동작으로 몇 초간 홀딩하는 틈마다 머릿속에 생각이 침투해왔다. 이상해. 내 마음의 사분면은 얼마나 끌어당기는지가 X 축이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Y 축인데 4 사분면에서 1 사분면으로 가기도 전에 자꾸 3 사분면으로 좌표 이동한다. 다음에 또 만날 기약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왜 자꾸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 헷갈려. 그 사람이 헷갈리게 한 건 전혀 아닌데 그냥 늘 분명한 내 좌표가 어쩌다 이렇게 길을 잃었나 해서 헷갈려. 시작점에 서 있는지, 볼 일 없으면 잦아드는지 모르겠어서 헷갈려. 이 와중에 '헷갈리다'가 맞는지 '헛갈리다'가 맞는지 찾아봤는데 둘 다 표준 표기법이라고 한다. 이 단어가 헷갈림 그 자체구만. 자꾸 헷갈리게 하지 말고 2 사분면으로 나랑 같이 갈 거 아니면 그냥 비켜줄래? 아니 너 말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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