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빠순이

by 담쟁이

예술가의 도덕성과 그의 작품을 별개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몇 해전 불거진 한국 문단의 미투 운동 이후로 나는 그간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위로를 안겨주었던 작품들과 몇몇 문인들을 완전히 지워버렸고, 그런 스스로를 보면서 이 정도의 단호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당시에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미뤄두었지만, 이번 주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때의 마음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한다.


대한민국 1세대 빠순이라는 이름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고 그 어느 곳에 가서도 아직까지 좋아하는 ‘오빠’들이 있다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말에 수치심을 느낀 것은, 내가 좋아해 온 것이 대단한 성취가 있는 예술가가 아니라 아이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 그 작품이자 그 생활이자 말과 행동과 약속들을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생활은 존중해 줄 수 있는 정도로 성숙한 팬과 스타니까 쿨하게 넘어갈 수 있다’ 따위의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좋아하는 다른 뮤지션들의 사건 사고 후에도 태연히 음악을 듣던 내 모순된 행동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빠순이로 시작한 관계는 이십 년이 지나도 빠순이와 오빠의 관계고, 아티스트와 팬으로서 맺는 관계의 영역으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것.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그게 원래 그렇다.


게다가 몇 번의 현실 연애를 겪고, 직간접 경험을 통해 이 상황이 당사자인 여자들 입장에서 얼마나 엿같은 것인지 느낄 수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 오빠’가 사회면에 나오는 것보다 어쩌면 더 창피하고 화나는 일이다.


우리에겐 오랫동안 바르고 정직하고 그래서 조금 노잼이지만 눈물 많고 로맨티시스트였던 그였기 때문에, 사석에서 ‘팬이라는 여성분을 만나면 더 조심하게 된다’는 발언을 했던 그였기 때문에, 자신의 팬임을 자처했던 여자들을 연인으로서 대했던 방식과, 백번 양보 해 실수였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방식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실망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다. 실제 내가 겪는 일이라고 한다면 내 대응은 피해 여성분들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좋아했던 내 어린 시절과 지난시절의 열정들과 또 작년 한 해를 두근거리게 하고 올 9월을 준비하던 내 ‘빠심’이 순식간에 ‘오빠’에 의해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평범하게 자라서 돈 벌고 연애하고 사회생활하면서도 한 편에 자랑스럽게 유지했던 빠순이 타이틀을 버리고 싶게 만든다.


나는 결국 탈덕의 길로 가게 될까?


단언하기 어려운 것도, 이따위 일이 일생일대의 사건인 것도, 다 내가 빠순이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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