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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Nov 28. 2021

진솔함

덧붙인 그 말이 어른스러운 첫째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최대치인 것 같아

친구나 지인의 집에 방문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는 열과 성을 다한다. 놀아준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같이 열심히 논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친구에 가깝게 행동하고 말하려 한다. 이런 노력이 꽤 잘 먹히는 편인지 일단 몇 시간 정도만 주어지면 헤어질 때쯤에는 그 집 꼬마들을 사로잡아 심한 경우 서운함의 대성통곡까지 받아내고야 마는 '이모 파탈'이 바로 나다. 


올여름 출산을 하고 아들 넷의 엄마가 된 학교 동기의 집에 놀러 갔다. 한참 외국생활을 하다 최근 귀국해 지방에 자리를 잡은 가족이라 기차 타고 내려가 1박 2일 신세를 지면서 집 구경도 하고, 각각 아홉 살, 일곱 살, 다섯 살인 세 아이들과도 충분한 놀이시간을 가졌다. 놀아주는 게 아니고 같이 노는 거니까 게임을 해도 절대 일부러 져주지 않고, 정정당당하지 않은 플레이나 억지 앞에서는 정색하기도 하면서 남자애 한 명도 아닌 세 명을 한꺼번에 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체력과 에너지로 빠지지 않는 나인데도 마지막에는 좀 도망치고 싶은 느낌이었달까. 살갑게 달라붙고 아낌없이 애정 표현하는 딸내미들과 달리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뛰고 구르고 도망 다니며 장난을 그치지 않는 아들들이라 이번에는 마음 사는데 실패했구나 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던 찰나 가장 시크한 첫째가 내 정면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기차 시간 몇 시예요? 다다음주 금요일에 한 번 더 오면 안 돼요?"


잠시 잠깐 든 정 때문에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기며 울음 터뜨리는 것도 정말 사랑스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것도, 이모는 멀리 살아서 자주 볼 수 없다는 것도 아는 아이가 차분한 인사 끝에 덧붙인 그 말이 어른스러운 첫째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최대치인 것 같아 다른 어떤 말보다 마음이 찡했다. 아이의 이름만큼이나 진실하고 솔직한, 나와의 시간이 정말로 즐거웠다는 감사와 애정의 표현. 


이모도 너희들이랑 노는 시간이 참 즐거웠고,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감동받았어. 고마워. 다다음주 금요일은 어렵지만 내년에 더 재미있는 레고를 사들고 또 놀러 갈게. 그때까지 엄마 잘 도와드리고 동생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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