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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an 18. 2022

설명

나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한 사람은 영원히 벽 같은 존재겠지만

언젠가 회사에서 누구와 친하냐는 질문을 받고서 '친하다'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질문자에게 되물은 적이 있다. 가령 '퇴근 후에 사적인 내용으로 연락하는 사람'이라든지, '같이 여행을 가본 사람' 같은 구체적인 활동 단위로 정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설명에 설명, 질문에 질문이 오고 가는 삼십여 분간의 대화 끝에야 비로소 어떤 것을 묻는 질문이었는지 정리가 된 내가 답변을 하려고 하자 상대방은 이미 지쳤다는 듯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거 절대 안 물어볼게요"라는 진담 같은 농담을 건넸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머릿속에 있는 개념을 상대방의 언어로 변환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 질문자는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언어가 각기 다르다는 견해에 관해서, 혹은 인지한 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관해서 나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내 답변이 중요하지 않은 스몰 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정의'를 내리고 정확하게 '설명'하는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피곤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말꼬리를 잡거나 대화를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오해까지 받을 때면 그렇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또 어떤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이 오해는 설명을 더해서는 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자세한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고 긴 설명 없이도 이해받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한 사람은 영원히 벽 같은 존재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나에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지금 내가 너를 보며 느끼는 '이라는 대답은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사실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표현이  감정에 와닿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주는 어떤 감각이나 감정이  순간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했을지 몰라도  느낌 그대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한 나에게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무언가 비슷하게 느낀다면 그건 상대방의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스스로의 경험을 내적으로 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내가 동시에 동일한 것을 느끼고 있는가를 가늠할  필요한 것은 동일한 측정기준이다. 그게 심박수와 호흡의 가빠지는 정도든, 이명이 생기거나 눈물이  도는 것이든 실제 확인할  있는 증거로 치환했을 때만 우리가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할  있다. 사랑이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이자 상태라고 말한다해도 설명이 필요한 입장에서는  그게 설명 가능하지 않은지 설명을 듣는 것이 훨씬 공감에 도움이 된다.


여기까지가 '왜 나는 호락호락하게 맞장구를 쳐 주지 못하는가'에 관한 나름대로의 고찰이다. 유난히 공감에 인색한 나에게 상처받거나 좋은 의도로 건넨 말에도 삐딱선 타는 나를 성가시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면 이 글이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앞으로 우리의 관계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부디 '세상에는 이런 인간도 있다'는 걸 이해하는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이 글이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방식에 관한 내용임을 유념해주길 바란다. 내가 감정을 못느끼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면 중대한 오해를 한 것이니 맥락을 고쳐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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