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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an 25. 2022

사치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 아껴야 하는지는 취향의 문제


나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지하철로 퇴근해
내 서재에서 에르메스 찻잔 세트에 명품 보이차를 마시는 삶을 꿈꾼다.
그런 삶은 돈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자기만의 주관과 취향의 깊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윤관, <아무튼, 서재>



사치와 럭셔리는 구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만 원을 호가하는 의자를 쓰고, 원목 프레임의 몇 배는 비싼 매트리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단지 사치라는 말로 일컬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말에 무릎을 치면서 어느덧 꽤 오랜 세월 곱씹게 된 내 대학시절의 에피소드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 운동권에 심취해 있던 한 동기는 내가 즐겨 입던 옷 몇 벌에 박혀있던 수입 캐주얼 브랜드 로고가 허영의 외현인 것 마냥 '부르주아'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써가며 가시 돋친 말을 던졌다. 차라리 애초에 자신과는 '급이 다른 부잣집 딸'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함께 떡볶이를 먹고 지하철을 타는 내가 본인 기준으로 '대학생의 적정 의류비'를 상회하는 그 브랜드의 옷을 입는다는 것이 분에 맞지 않는 사치이자 과소비로 느껴졌던가보다. 노동의 가치도 근검의 미덕도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을 일깨우고자 했던 세 살 연상의 그 동기는 그러나 끝내 사치에 대한 내 자백과 반성을 얻어내는데 실패했다. 내가 그 비난에 대해 해명이나 합의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치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내 옷은 이대 앞에서 비슷한 옷 열댓 벌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선택한 것은 한 해 지나면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오래도록 싫증 나지 않는 디자인과 내구성, 저가의 옷이 흉내 낼 수 없는 기능이었고, 그 모든 것이 합해져 풍기는 기품을 포함해 좋은 옷을 단정하게 입는다는 가치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취향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믿었던 그 동기는 옷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자신과 크게 달랐던 나의 취향과 가치를 그리 오래 견디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삶의 많은 순간에 생각한 적이 있다.

 

칠순 어르신이 비즈니스석 비행기를 탄다고 할 때 '그건 아니지 않나'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과연 청렴인지, 유기농, 무항생제, 비 유전자 변형식품만을 고집스럽게 찾아다니는 엄마에게 극성이라며 수군대는 것이 과연 알뜰함과 현명함인지.


양갈래로 갈라진 취향과 가치 앞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사치'라는 말로 비난할 때 그 단어 아래 깔린 비난과 경멸의 뉘앙스가 언제나 참 불편했던 나는, 작가가 사치와 럭셔리를 논한 부분을 읽으며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 아껴야 하는지는 취향의 문제'라는 말에 마음의 밑줄을 거듭 그었다.


취향 차 때문에 비난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 수록 나와 관계 맺는 사람의 취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게 된다. 자기 취향이 드러나는 곳, 아낌없이 돈을 쓰는 곳은 너무 많을 수도 모호할 수도 없다. 취향인 것과 취향이 아닌 것의 분별이 뚜렷하고 고상한 사람은 반드시 그 삶에 주관과 깊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이 분명한 사람에 한해서 나와 비슷하다면 가까워지기가 쉽고,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시각과 태도를 경험할 수 있다.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문득 나의 취향을 좀 더 다듬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단한 돈은 어차피 없으니까 작고 귀여운 돈을 아낌없이 투자할 나의 취향, 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이제부터 하루하루 더 많이 생각하고 싶다. 나이 먹을수록 사람들의 취향을 더 깊이 살피는 내가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의 취향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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