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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Feb 07. 2022

자리

내 마음속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하는 검사 결과였다

 년을 난 뒤 헤어지는 데 십 개월이 걸렸던 K 연인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어느  구석에는  두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게 욕심이든 미련이든 서로 여러 가지로 안간힘을 썼는데도 만나고 헤어졌던 모든 과정의 두배쯤 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진짜 친구가   있었다.


무 자르듯 잘릴 리 없는 관계의 경계를 확신하는 근거는 그때쯤부터 만나고 있던 애인에게 K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딱히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는 할 필요가 있는 말이었다. 그 순간 곁에 있던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그리고 깊이 내 마음에 있을 사람이 K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건 K가 내 마음속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하는 검사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검사가 안심할만한 결과를 가지고 나왔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었다.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시의 애인은 이름만 빼고 모든 게 희미해졌지만 K만은 아직도 인생의 친구가 되어 남았다. 지금 이 얘기까지도 웃으며 할 수 있을 만큼 허물없이.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에 누구나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함부로 제안하거나 추천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런 관계를 선택하고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우리를 후회하지 않는다. 서로의 인생에 아주 작은 그러나 지워지지 않을 분명한 점으로 자리 잡은 지금의 관계를 사랑한다. 연인으로 함께했던 모든 기억과 기꺼이 바꿀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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