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여행이 주는 위험과 불안에 집중하고 그걸 잘 해결해내는 내 모습이 좋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출간 직후부터 내내 베스트셀러였지만, ‘남들 다 읽는 글’의 가치를 절하하는 내 괴팍한 습관 덕에 삼 년이 지난 이후에야 읽게 되었다.
성공한 작가의 팔자 좋은 영감 여행기를 가볍게 엿볼 요량이었지만 사실 작가는 여행지에서 완성한 글은 두 편 밖에 없다고 하고 자신의 여행기 마저 여행이 끝난 뒤에 집에 와서 쓰는 사람이었다. 이 책 역시 우리나라 어느 동네에 있는 그의 집 또는 작업실에서 써 내려간 글이겠지만, 읽으며 좋은 작가는 실제 어디론가 떠났다 돌아온 뒤가 아니어도 글감으로서 여행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고 그 생각의 몫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 씨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작가가 거듭 말하는 여행의 의미 중 내 마음이 갔던 설명은 요약하면 ‘과거와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걱정이 많은 편도 아니고 무언가를 떨쳐내기 위해서 여행을 결심한 적도 거의 없지만 이러한 생각의 틀에 내 지난 여행을 맞추어보니 신기하게도 들어맞는 구석이 있었다.
여행을 왜 좋아하냐는 질문은 살면서 수없이 들었지만 ‘여행하는 내 모습이 좋아서’라는 내 똑같은 대답은 어쩐지 불완전해 보였다. 이제는 좀 더 통합적이고 분석적인 결과를 그 답변에 더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임상심리사 지인이 내게 ‘위험인지와 회피 수준이 다른 사람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평했던 것도 여기에 활용할 수 있다.
‘여행이 주는 위험과 불안에 집중하고 그걸 잘 해결해내는 내 모습이 좋아. 내가 가진 과거와 미래의 많은 문제로부터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 그 상황이 평안함과 자기만족을 가져다줘.’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명쾌한 여행의 정의는 내게 ‘자기만족’, 어쩌면 그보다 더한 ‘자아도취’다. 이번에도 다음에도 나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기꺼이 나를 내어 놓을 것이다. 어김없이 잘 해낼 내 모습을 의심 없이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