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제목이 희한해서 집어 들었다. '쓰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는 건지,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건지 알쏭달쏭했던 이 책은 전업 작가 몇을 포함해 자기 글값이 꽤 되는 아홉 명이 '나에게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각자 이야기하는 짧은 수필 모음이었다.
하지만 기획 의도가 '이런 사람들도 글 쓰는 건 똑같이 어렵습니다'를 전하고 싶어서였다면 실패라고 말해주고 싶다. 창의력이 부족하다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소설을 쓰기엔 삶의 이야기가 부족하다면서 문예전 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글 쓰는 삶을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꾸준히 에세이를 출간하는 이들이 저마다 '이 원고 계약을 해놓고 나서 후회했다'느니 '글이 안 써져서 괴롭다'느니 하는데 아직 시작하지 않은 글에 대한 고료를 받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영 엄살 같기만 하고 공감 가는 구석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정말 숙제로 써서 제출했던 글을 제외하면 내게 글쓰기는 숙제였던 적이 없다. 아홉 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다 어렵다고 하는데 넌 뭐가 잘나서 그게 어렵지 않으냐고 하면 물론 따져들 말은 없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는 게 쉽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 나는 글쓰기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쓰지 않는 편'을 택하는 쪽이다. 글이 안 나오면 안 쓰고, 나오면 쭉 쓴다는 뜻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사람에게는 형편없겠지만, 시야가 아주 긴 나에게는 인생에 걸친 꾸준한 즐거움이 바로 글쓰기이고 그 비밀은 괴로울 땐 그만두는 데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재미없으면 쉽게 그만두는 내 기질이 한몫했을 테고, 벼락치기 효율이 좋고 그 몰입에서 오는 스릴을 즐기기까지 한다는 MBTI 인식형 P유형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강력한 이유는 이 책 속 한 필자가 언급한 '쓰고 싶지 않은 마음 깊숙이에 깔린, 잘 쓰고 싶고 남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아예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출간을 준비하며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좋아할 글을 쓰기보다는 내 글을 읽을 단 몇 명을 만나리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크게 움직였다. 엄청난 작가주의 문학을 하는 게 전혀 아닌데도. 그렇다고 내 글에 너무 자신만만해서도 아니다. 더 잘 쓴 글과 서투른 글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 문장력과 유려함이 항상 글의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기에, 나도 언제나 더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만 나를 괴롭히지 않고 쓰는 글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늘 이것저것 두서없이 쓰게 된다. 한 문장 나오고 글을 완성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빈 모니터 앞에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생각을 활자로 남겨두고 싶고 그 생각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과 기쁘게 나누고 싶다. 쓰는 나 자신에게 도취되는 걸까. 그래서 멋대로 상상하자면 저 책의 원고청탁이 내게 들어온대도 고사할 수밖에 없다.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잘 모르니까 쓸 내용은 소설뿐이다.
오늘은 참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은 아주 다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 다들 그렇게 들쑥날쑥하다고 하니까 썼다 말았다 하는 나도 꽤나 작가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