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보다는 내 판단과 결정, 그것을 좌우하는 호기심에 달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갖기 전 처음으로 ‘물뽕’을 접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간, 생업과 일상에 매달리면 잠시 잊다가도 또 틈만 나면 ‘이번엔 어딜 가서 맞을 수 있나’ 찾아다니는 이 마약의 다른 이름은 스쿠버다이빙이다. ‘좋아하는 게 뭐냐’라는 모호한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여행’과 ‘바다’ 두 단어를 말하는 내게 물속의 새로운 세상을 여행한다는 건 정말이지 운명 같은 취미였다. 친구로 말하자면 단짝, 연인으로 말하자면 천생연분이랄까. 그래서 늦은 여름 휴가지로 열대 바다를 택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국외로 나가지 못했던 터라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육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지형, 그 속의 동식물들을 보는 기쁨을 함께 누리는 여행이 정말 고팠기 때문이었다.
휴가 전에 했던 가장 야심 찬 준비는 다이빙용 마스크(코를 덮는 형태의 물안경)에 도수를 넣은 것이었다. 다이빙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보다 전 지구의 산호초와 생물다양성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기도 했지만 내 시력도 많이 떨어졌기에, 도수를 넣은 마스크를 쓰면 그간 맨눈으로 보던 풍경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정밀한 시력 교정 덕분인지 원래 이 바다가 그런 건지 오랜만에 만나는 열대 바다는 정말 매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닷새 동안 매일 세 번씩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물에 뛰어들어도 체력은 소모되기는커녕 강력한 물뽕으로 텐션은 날마다 높아졌고 최고조에 이를 때쯤 이번 일정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나이트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밤에 물에 들어가는 나이트 다이빙은 낮의 환경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방식이나 수신호를 주고받는 법,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다를 좋아하는 나지만 어두운 밤바다에 뛰어드는 데는 용기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지라 낮부터 손전등 쓰는 연습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OT도 미리 받았다.
드디어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맘으로 손전등을 쥔 채 입수, 앞뒤 사람과 간격을 맞추어 천천히 유영해나갔다. 수 분이 지나고, 나를 감싼 어두움이 더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때쯤 시야를 넓혀 둘러본 바닷속의 밤은 지난 며칠간 본 푸르뎅뎅한 바다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곳마다 가시광선 범위 내의 모든 색, 그러니까 육지에서 보는 것과 거의 비슷한 색감의 풍경들이 나타났다. 낮에 바쁘게 쏘다니던 작은 물고기 떼들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머리통만 한 성게들과, 다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갑각류들이 깨어나 움직이는 그 바다는 마치 연극의 2막이 시작된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새로운 환경에서, 도수 넣은 내 마스크의 역할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다. 시력이 좋다고 언제나 그 최대치를 활용하며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너무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면 오히려 자세히 보거나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360도로 둘러보며 더 많은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낮 다이빙 때는 수중 카메라로 찍어두지 않는 한 생물 하나하나보다는 전체의 풍경이 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을 때가 많다.
그러나 라이트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바닷속에서, 내 눈이 얼마큼 더 볼 수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볼 것인지 무엇을 볼 것인지는 라이트가 비추는 방향과 범위에 따라 달라지고, 그건 시력보다는 내 판단과 결정, 그것을 좌우하는 호기심에 달렸다.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이 어쩌면 낮의 바다보다는 밤의 바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망망대해에 뭐가 있는지 대충 알면서도 내 앞에 뭐가 나타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듯이, 수십 년 살아온 삶이지만 오늘 살아갈 하루와 내일부터 살 모든 순간은 살아보지 못한 순간이고, 그래서 칠흑 같은 밤바다를 떠다니는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발을 땅에 붙이지도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까지도. 그럴 때마다 이미 가진 경험과 능력에 더 기대고 싶지만, 시력이 그렇듯이 아주 잘해봐야 내 한계까지가 전부인 그것들이 큰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도 자주 만난다. 나이트 다이빙을 하면서 애꿎은 시력을 탓하며 마스크의 도수를 높여두지 못한 자책에 빠지지 말기로 하자. 캄캄한 어둠 속 손전등 빛을 통해 선명하게 보았던, 내 맨눈으로 봤던 바닷속과는 전혀 달랐던 풍경을 기억하면서, 의지적으로 범위와 초점을 새롭게 하고 더 밝게, 더 집중해서 빛을 비춰보기로 하자. 그때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시력에 기대어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