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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Nov 20. 2022

안녕: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 감상문

나는 그렇게 당신들 모두에게 두 번째 안녕을 고했다

드라마건 예능이건 연재물은 잘 보지 않는다.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몰입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몇 달간 유튜브 쇼츠나 연예뉴스,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 듣던 티빙 오리지널 <환승 연애>가 종영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몇몇 커플의 연애 서사 압축본을 유튜브에서 찾아 정주행 했다.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게 했던 한 커플의 드라마 같은 서사를 보는 동안 오랜만에 내 안의 망상인이 눈을 떴다.


'내가 저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갈까?'


떠오르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출연에 응할 것 같진 않았지만 지정하면 무조건 나온다고 가정하고, 각자의 행동 양상과 성향들을 고려해서 쇼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보았다.


'A는 입 열고 다니면 며칠 내로 여자들한테 기피될 거 같은데.'

'B는 상황 돌아가는 걸 보기만 하다가 버스 떠나보낼 애지.'

'C가 여기서 좋다고 재미보고 다닐 생각 하니까 꼴 보기가 싫다. 얘는 제외.'


환승 연애 출연 커플들이 보여준 미련, 추억, 아련함, 애잔함, 그 어떤 드라마적 요소도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 어떤 X가 출연한다 해도 끝난 인연에 눈 돌리지 않고, 쓸데없는 배려로 여지 남기지 않으며 새로운 사람에게 돌진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조금 의아한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어쩌면 헤어지고 나서도 저렇게 생생한, 그래서 예쁘기까지 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는지. 물론 대부분의 커플이 헤어진 지 오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기회의 영향일 거라 생각한다.


헤어진 후에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애증 범벅의 지지부진한 마무리와는 다르다. 내 사회적 자아가 움직여야 하는 대국민 공개 세팅에서, 상대방과 잠재적 썸남, 그리고 잠재적 라이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와 그가 만든 끝을 돌아보는 건 유독 내 연애에서만 잘 안 되는 자기 객관화를 하기 최적의 조건 아닐까. 그리고 그 객관화는 내 잘못과, 내가 빠져들었던 잘못된 패턴과, 내가 충분하게 의식하지 못했던 큰 애정과 배려를 다시 한번 깨닫고, 그에 비해 우리의 마무리는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알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말에서 재결합한 커플이든, 새로운 인연을 찾은 커플이든, 그도 저도 아닌 커플이든 그들이 보여준 케미는 성숙해 보였고, 거짓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과거를 뒤집고 싶지 않더라도 처음보다 나은 과거를 만들 수 있는 건 분명 누구에게든 선물일 테니까, 그런 선물을 받은 사람들다워 보였다.


내 안의 망상인을 다시 깨워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들이 소개하는 X로서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과연 좋은 기억만 골라 고운 말로 표현해줄까. 예쁜 점 귀여운 점을 말해줄리는 만무하지만 함께 재미있었던 기억들을 많이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잘 되길 바라는 사람'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인생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내가 못되게 굴었던 기억만 가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날 만난 것도 그때의 당신이 한 선택이었으니 그것조차 그의 삶에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부디 서로에게 사과하는 일은 적고 응원하는 일은 많은 그런 X지간이 되었으면 한다.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당신들 모두에게 두 번째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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