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이 없다. 마치 한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인내를 다 소진한 것처럼
“넌 구제불능 쓰레기야”
자기소개 같은 일성을 내 면전에 내팽개치고 씩씩거리며 저만치로 가는 모습이 처음엔 황당하다가 나중엔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저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분노, 이후 메시지로 쏟아진 적반하장의 요구와 논리적이지 못한 자기변호, 너무 익숙한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를 것임을 알았다. 이제껏 수없이도 나를 뒤돌려 세운 그 무언가가 또다시 잡아끄는 느낌도 있었지만 더는 안 됐다.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짐을 챙겨 뛰쳐나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후련했다. 오랜 세월 지긋지긋하게 나를 잡아 끌어당긴 업보 같은 것을 벗어던지는 느낌이었다.
‘끝이다. 해방이다.’
상관없는 사람들이 ‘형제 원래 다들 그렇다’처럼 쓸모없는 말이나 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골 깊은 갈등을 에피소드 몇 개로 치환시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몇몇 결정적인 순간들은 분명 있었다. 엄마아빠 없는 집에서 싸우던 초등학생이 분에 못 이겨 자기 팔뚝만 한 식칼을 들이댔을 때, 나는 칼이 무섭다는 생각보다 내 앞의 사람은 쉽게 통제력을 잃는 위험한 사람임을 처음 깨달았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던 중 아무 맥락 없이 “우리 집에 돈이 어딨냐. 대학원을 니가 왜 가. 나 박사해야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반적인 관계라면 ‘우리 집 형편에 대해 언니에게만 귀띔해준 건가’라고 의심할 법도 하지만, 이십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 순간 오히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의 비뚤어진 자의식과 낮은 자존감을. 남을 자기보다 낮은 곳에 두어야 자기 우월감을 풍족히 느끼는 이 불안정한 포식자의 가장 손쉬운 제물은 평생 동생인 나였다는 사실도.
종갓집 장남인 아빠에게서도 딸이라고 홀대한 번 받은 적 없는 귀한 자식은 태어나서부터 애지중지 고임을 받았고, 그렇게 제멋대로 웃자란 심성이 허영과 불안을 만나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교정의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짝인 줄 알았던 같은 학교 친구를 시녀처럼 헐뜯을 때 누군가에게 들켜 왕따라도 당했더라면, 연인을 자기한테 굴복해야 할 존재로 취급하고 지배하려고 할 때 크게 데고 차이기라도 했더라면 그 역경 덕에 모난 점이 조금이나마 깎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다듬어질 계기를 얻지 못한 까닭에 결국 영영 고치지 못할 만큼 크게 병든 건 그의 복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형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이 형벌을 받는 것처럼 그 병적인 패악질을 상대해야만 했던 나는, 때로는 참았고 자주 직면하며 싸웠지만 어떻게 하든 상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리진 않겠다. 그렇게 물러터진 멍청이는 아니고, 충분히 똑똑한 내가 반격으로 입힌 상처도 작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열등해야 마땅한 내가 구구절절 반박불가의 말대꾸를 하는 것이 그에겐 그 무엇보다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복받치는 울분을 자주 터뜨리곤 했던 나도 크면서 ‘감정형의 사람은 감정 없이 논리로 조지는 게 가장 빡치는구나’를 학습했고, 효율적으로 내 무기를 쓸 때마다 급소 찔린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는 걸 통쾌해할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십 년 넘는 직장생활의 경험은 내게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넘어선 안 되는 선과, 한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얼마나 관계에 해로운지를 알게 해 주었고, 바로 그 점이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스물아홉 대학원생에서 사회성이 멈춰버린 그와 나를 다르게 한다. 십여 년의 외국살이도 물론 내 것과는 다른 경험치겠지만 온갖 화려함만을 sns에 소통하는 것 외에 자기 가족에게 적용할 수 있는 성숙함 따위는 없었다. 십여 년간 꾸준히 그는 아빠에겐 그리움, 엄마에겐 마지막까지 근심, 그리고 나에게는 해악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데도 짐을 싸서 온 게 잘못이라면 이 모든 괴로움도 내 몫이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예상이 되는데도 이렇게 긴 일정으로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잠시나마 착각한 내 죄.
함께 있으면 즐겁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귀한 휴가를 할애하는 것이 나에겐 큰 희생이었다는 점을 누군가에게 휴가원 한 번 결재받아본 적 없는 그는 영영 모를 것이다. 수시로 생활비를 보내도 인사 한마디 없는 큰딸의 안부 걱정뿐인 아빠 때문에 억지로 비행기표를 산 것도 ‘공짜로 먹고 자고 놀 수 있어서’로 자체 해석하는 사람이니까. 링크만 보내고 지시하는 수십 개의 쇼핑 리스트를 하나하나 주문해서 짐가방 하나를 꽉 채우는 건 한 달 급여의 절반에 육박하는 돈보다는 내 시간과 노력이 훨씬 아까웠다. 그 모든 게 내겐 희생이었지만 아쉬운 말 한마디 한 적 없는데 결국 그의 정신병적 발작이 시작되자 나는 ‘고작 그런 걸로’ 유세 부리고 ‘형부의 노력은 좆같아서’ 개판 부리는 배은망덕한 가시나가 되고 말았지. ‘내가 이 꼴 당하려고’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다.
그래도 일곱 살짜리 조카는 죄가 없으니까, 아빠가 속상해하면 안 되니까, 사나흘 외모로 인신공격 당하면서도 꾸역꾸역 참다가 돌려서 한 마디 한 나한테 오히려 급발진하며 ‘너의 말하는 방식이 아주 잘못돼서 손찌검을 할뻔했다’느니, ‘니가 백번 나한테 사과해야 마땅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너와 달리 난 내 딸을 위해서 원수한테 절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잘못이 없어도 사과하라면 한다’느니 내 성격과 자존심 탓 외에 모래알 한 톨만큼의 자기 과실도 의심하지 않는 그의 뻔뻔한 말 앞에서, 더 이상 싸울 의미도 대화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는 걸 확신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와서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헤어져 산지 십 년이 넘었으면 친한 친구만도 나를 모르는데 마치 나를 속속들이 아는 척, 어떻게든 자기가 알고 있는 ‘열등함’의 증거를 찾으려는 그 노력에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기로 했다. 그게 아무리 아빠의 소원이라고 해도, 그가 아무리 병적인 신경증 환자라 해도. 이제는 내 마음속의 마지막 자비가 바짓단을 잡고 늘어진다 해도 여력이 없다. 마치 한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인내를 다 소진한 것처럼.
“엄마랑 이모는 good companion이 아니니까… 엄마가 서로 사랑하지만 그런 사이도 있다고 말했어.”
어쩐지 꽤 오래 못 볼 것만 같은 조카를 형부가 마지막으로 데리고 나와 인사시키고 헤어지는 길에 물색없는 척 제 엄마에게 들은 말을 전한다. 아이의 바람이 뭔지 알겠어서 한번 울컥했지만 흔들릴 순 없다. 제 엄마의 저 말이 또 한 편의 진심이라는 것도 알지만 자신을 희생자로 서술한 버전이기에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끝이다.
불안정한 엄마 밑에서 자랄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만감이 교차하지만 내 딸은 아니니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만 남겼다.
‘아니, 엄마가 말하는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살면서 이런 것도 사랑이라며 너에게 상처를 주는 그 어떤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 사랑은 절대 네게 준 것을 도로 갉아먹지 않아.‘
부디 조카가 유사품에 속지 말기를. 가짜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자기를 지켜내기를.
나는 어쩌면 삼십 대의 가장 잘한 선택,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끝이다.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