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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Feb 20. 2023

출근길 만원지하철 단상

다들 이런 일을 겪고도 좋은 아침인 척하는 거겠지


출근길 만원 지하철처럼 하루를 망치기 좋은 게 없다. ‘오늘 하루도 힘을 내 봐야지’ 소박한 다짐으로 시작한 내 하루는 소박한 몸싸움 몇 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어제도 겪었고, 내일도 겪을 것이 거의 확실하고, 언제까지 겪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지난 생의 업보 같은 출근길의 데자뷔. 뜬금없이 신들을 기만한 죄로 끝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를 떠올린다. 새롭고 재미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고 거기에 의미까지 있다면 내 수명을 갈아 넣는대도 좋을 만큼 빠져드는 나 같은 성향의 인간에게는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 때, 그 일에 재미가 없을 때, 재미도 없는 일에 의미조차 찾을 수 없을 때, 형벌이라는 표현이 더없이 적절하지 않나.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옥철의 몸싸움에 한정이지만, 사오십분의 출근길 이후의 일을 얼마큼 좋아해야 매일의 이 괴로움을 견디는 진통제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호선에 탑승해서 오호선으로 갈아타 내리는 동안 동안 열차 안의 인파가 물갈이되다시피 하는 주요 환승역은 신도림, 영등포구청, 신길, 그리고 여의도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노련한 직장인들이 점유하는 공간일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가 않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굳이 이 시간대 지하철에 탄 어르신, 청소년, 기타 다양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끼어있고, 그들은 으레 이 놀라운 혼잡과 그 안에서 짠 듯이 정연하게 타고 내리며 또 제 자리를 딛고 서는 직장인의 움직임에 당황하면서도 잘 맞추어 간다.


문제는 가끔씩 지나치게 자기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 문가에 버티고 서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런 분들은 주관보다는 불안이 큰 게 분명하다. 그 주관이 ‘지하철에서 남을 밀어서는 안 된다’를 강하게 주장하는 동안, 불안은 ‘여기서 한 번 밀렸다간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갇힌다 ‘라는 생각을 주면서 출입문 근처에 버텨 서서 타고 내리는 수십 명의 사람과 몸이 부딪치는 상황을 만든다. 처음에는 본인의 부피감에 대한 인지가 낮은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한두 번의 환승역에서 같은 경험을 한 뒤에도 밀리는 상황을 심히 불쾌해하거나, 떠밀려 내려서도 옆으로 비켜서지 못하고 정가운데서 치고 들어갈 틈을 보는 모습을 여러 번 보면서 깨달았다. 이분들은 정말 불안도가 높고, 아무리 혼잡해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만큼 출근길 지하철 경험이 많은 분이 아니라고. 며칠에 한 번씩은 꼭 보게 되는 그런 광경을 눈앞에서 보면 전에는 눈치 없이 왜 저럴까 싶어 불편했지만 이런 고찰을 해본 뒤에는 오히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대체 어떤 급한 일이 있어 이 아수라장에 스스로 뛰어들어 괴로움을 겪는 걸까. 사실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이 아니었더라면 지극히 보통이었을 사람이 이 비보통의 상황 때문에 눈총을 받고 피차 불쾌함과 짜증을 만들어내는 것이 슬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오늘도 괴롭고 슬프기도 하고 여전히 짜증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는 월요일 출근 중. 다들 이런 일을 겪고도 좋은 아침인 척하는 거겠지. 기분보다 한 톤 높여 인사할 준비 장전하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여의도 직장인이란 얼마나 굳건한 사람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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