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한 철 잘 살다가, 마음을 다 주고 떠난다
긴 휴가를 내거나 비슷한 짬이 생길 때마다 시간의 최대 효용을 내는 나만의 방법은 바로 '삶의 터전을 옮겨 살아보기'이다. 어차피 혼자 살면서 멀쩡한 집 놔두고 어딜 가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보기'와 '여행하기'의 경계에 서서 내일도 머물 수 있는 사람의 여유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의 자유,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체험해 본 사람은 기회만 닿으면 올라오는 이 '살아보고 싶은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어릴 때는 매년 여름 속초와 고성 사이 어디쯤 위치한 오래된 리조트에서 교회 수련회가 있었다. 미시령이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꼬부랑 고갯길을 한참 갈 때면 늘 멀미가 많이 나서 봉고차 뒷자리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을 청했다. 차창밖으로 강하게 들이치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감아도 눈이 부셔서 미간을 찌푸리면, 엄마는 인상 펴라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감은 내 눈 위에 덮어주었다. 휴게소마다 부스스하게 깨어났다 다시 자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강원도에 도착해 있었고, 어딘지 모르는 바닷가에서 잘 놀고먹다가 다시 꼬부랑길을 달려 집에 오면, 며칠 후에 어깨부터 콧잔등까지 시꺼멓게 탄 살갗 껍데기가 벗겨지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가본 적 없는 속초가 낯설지 않았던 건, 이렇게 매년 똑같은 유년의 추억 몇 겹이 내 안에 지층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직장과 직장 사이 짧은 틈을 타, 7월 초 어느 날 청초호가 바로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속초는 내 어렴풋한 기억보다 훨씬 아름답고 또 재미있는 도시였다. 정해진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 며칠 외에는 대부분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하는 시간에 눈 떠서 원하는 만큼 볕을 쬐고, 매일 해변으로 출근해 질리도록 바다 수영을 하고, 원하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누비면서 놀고먹고 쉬고 까불었다. 나와 비슷하게 지내고 있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 함께 밥 먹고, 운동하고, 인근도시로 나들이를 다니며 친구가 되었고, 서울에서 초대한 친구들에게 우리 동네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누군가는 '왜 (너같이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시간 동안) 해외에 나가서 한달살이를 하지 않았냐'라고 했지만, 한 달간 속초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방랑자 같았고 동시에 동네사람처럼 이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누렸다.
시간이 성실히 흘러 이렇게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내일부터 일터로 돌아가지만 익숙한 사람들이 반겨주는 곳은 아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인생의 새로운 막을 맞이하는 기분이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되면 무대에 설 수밖에. 특별하게 마지막 날을 보내고 싶어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보았지만 이곳에서의 모든 날이 특별했으니까 그냥 여느 날처럼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바다수영을 하는데 눈물이 조금 났다. 떠나는 게 아쉽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그게 눈물의 이유는 아니었다.
하루를 마감하고 짐가방까지 다 싸서 챙긴 뒤 마지막으로 청초호의 빛나는 야경을 보려고 방에 불을 다 끄니 이제야 알겠다. 속초에서의 날들, 그 시간과 순간이 겹겹이 쌓여 내 안에 또 다른 지층을 만들었다는 걸. 그냥 좋았던 여행에 관용적으로 붙이는 힐링이 아니라 뭔가 고장 났던 몸과 마음이 다 고쳐진 것만 같아서, 돌아가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서툴게 부딪쳐도 충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뭔가를 바라고 애쓰지 않았는데 속초의 바다와 산이, 햇볕과 바람과 하늘이 그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이렇게 또 한 철 잘 살다가, 마음을 다 주고 떠난다. 사람한테는 그렇게 쉽게 내어주지 않는 마음인데, 마을과 공간에는 곳곳에 한 조각씩 떼어 놓아두었다. 청초호의 빛나는 야경을 감상하던 불 꺼진 방에 한 조각, 나 혼자 수영하던 등대해변 한구석에 또 한 조각, 울산바위 보며 자전거 달리던 설악대교와 금강대교에 각각 한 조각, 그렇게 애틋하게 이별한다. 마음을 놓고 가니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이제는 우리 집 같은 사랑스러운 동네 속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