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마다 조금은 쓰라려야 한다는 걸 뒤꿈치의 감각이 일깨워 주었다
“어이가 없네. 너 나를 몰라?“
뒤꿈치에 반창고를 붙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올해만 해도 초여름까지 내내 신었던 플랫슈즈가 이제와 발 뒤꿈치에 상처를 낸 것이다. 지난달 잠시 집 떠나 있는 동안 자기를 들고 가지 않았다고 새 신발이나 할법한 고약한 자기소개를 했다. 내 몸무게에 눌려 납작해진 밑창이 아무리 우리 구면이라고 말해주어도 이 도도한 뒤축은 아랑곳 않고 심술을 부렸다.
그런데 문득, 심술이 아니라 정말 내 뒤꿈치가 낯설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만 신고 돌아다닌 한 달간 내 발의 모양도 결도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했겠지. 모든 처음이 그렇듯 신발 뒤축과 뒤꿈치는 또다시 합을 맞춰가야 하는 처음의 순간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무신경하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는 알아채지 못할 세밀한 조율과 치열한 적응의 시간을 저 아래서 보내고 있겠지.
처음은 살면서 여러 번 맞을 수 있지만 새로 시작할 때마다 조금은 쓰라려야 한다는 걸 뒤꿈치의 감각이 일깨워 주었다. 아무리 이별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처럼 시작 앞에서는 늘 어설프고 우당탕탕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다른 시작이 있다는 걸 기뻐해야지. 뒤꿈치 아플까 봐 새 신발을 사 신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양 뒤꿈치에 밴드를 붙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100 매입 아쿠아 밴드 한 통을 사뒀지. 박스를 다 비우기도 전에 뒤꿈치는 괜찮아질 거야.